[철강산업 혁신에 3,000억 투입]공급과잉 안풀리면 자금수혈 효과 미지수

중소철강사, 글로벌 공급과잉에
내수·수출 막혀 '부진의 늪' 빠져
혁신소재 개발·기술 지원 시급

“그나마 포스코니까 버티죠.”

포스코가 7년 만에 최대 규모의 분기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발표한 24일,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글로벌 공급 과잉이라는 난제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동차·조선 등 후방산업은 부진의 늪에 빠졌고 보호무역주의 기조까지 확산일로다. 동국제강의 영업이익은 올 2·4분기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40% 이상 쪼그라들었고 휴스틸은 8억원에 달하는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 전환했다.


지난달 말 BNK금융경영연구소는 부산·울산·경남 지역 철강업체들이 내수와 수출 모두 부진을 겪으며 마이너스 성장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상반기 지역 철강업체의 매출은 부산이 -9.3%, 경남 -5.3%, 울산 -2.6% 등 부진했다. 특히 이 지역 철강업체들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2016년 5.2%에서 지난해 3.8%로 줄었고 올해는 3% 이내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운영자금조달비용과 이자 등을 제외하면 사실상 적자인 셈이다. 지역 중견 철강사들의 실적 부진은 내수 철강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건설투자가 둔화되는 가운데 자동차·조선 등 주력 수요산업도 단기에 회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역시 대기업들이 쿼터제 등으로 활로를 찾는 반면 중소 업체들은 보호무역 장벽에 수출길이 꽉 막혔다. 이 같은 어려움에 정부가 5년간 3,000억원의 자금 긴급 투입을 결정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정부는 우선 포화 상태인 범용 제품 경쟁에서 벗어나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활로를 찾게끔 하려는 전략이다. 업계 관계자는 “철강업체 혁신이 시급해 이전부터 지원을 요구했지만 반도체와 전기차 사업에 밀려 좌초됐다”며 “최근 관련 부처가 경제성 평가에서 합격점을 준 만큼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했다.

업계는 당장 부진의 늪을 타개할 다른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가장 골칫거리는 역시 공급 과잉이다. 철강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철강사의 생산능력은 수요의 30%를 웃돈다. 공급 과잉의 주범인 중국의 물량공세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이 무역장벽을 쌓아올리면서 수출길은 틀어 막히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 철강 수요는 수년째 답보 상태다. 지난해 국내 강재 소비량은 5,640만톤으로 2015년 5,580만톤, 2016년 5,710만톤에 이어 5,500만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구조적인 업황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당장 꺼낼 수 있는 카드가 고부가가치화다. 정부는 산업 분야별 트렌드를 분류하고 이에 걸맞은 고부가가치성 철강 소재를 개발하는 데 2,0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자동차 분야에서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 시대에 발맞춰 높은 강도를 자랑하면서도 20㎛ 이하의 얇은 판을 개발하는 식이다. 조선 분야에서는 극지 개발을 위해 저온에서도 견딜 수 있는 소재, 건설업에서는 이상 기후에 대비해 600도에 이르는 고온에서도 강도를 유지하는 내화철근(fire resistant rebar)을 고안한다.

혁신 소재를 개발하는 동시에 중소·중견업체들이 이를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을 갖게끔 지원할 계획이다. 기술 개발의 효과가 대기업뿐 아니라 철강업계 전반으로 스며들게 하기 위해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철강업체가 포스코가 만든 제품을 재가공해 팔고 있다”며 “포스코가 혁신적인 차세대 강판을 내놓았다 한들 다룰 역량이 없으니 그림의 떡일 뿐”이라고 했다.

이를 위해 포항을 철강 산업 혁신의 전초기지로 낙점하고 테스트베드를 구축한다. 포스코-포스텍-RIST를 중심으로 한 기술 개발 인프라가 수십년간 유지돼왔고 포항철강산업단지가 인근에 위치한 만큼 중소 철강기업들과의 기술 교류도 용이하다는 판단에서다. 향후 광양·당진·창원, 그리고 수도권과 강원도를 기술 지역거점으로 연계 육성할 방침이다. 계획이 현실화되면 정부는 322개의 철강 산업 강소기업이 육성되고 약 7,809개의 일자리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보고 있다. 경제적 파급 효과는 1조356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 과잉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철강업계의 어려움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투자 여력이 없어 쩔쩔매는 중소업체들의 숨통을 틔워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우보·강광우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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