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대한민국 증시는 '무정부주의'인가

김광수 증권부 기자


흔들리는 자본시장에 선장이 보이지 않는다. 선장은 고사하고 항해사, 조타수, 어느 한 명 나서서 침몰하는 배를 구하려는 사람이 없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무관심 속에 국내 증시는 하염없이 가라앉는 중이다. 외국인의 매도에 공포감을 느낀 개인들마저 주식을 내다 팔며 주식시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지난 2015년 8월 국내 증시 상황은 지금과 비슷했다. 북한의 포격 도발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고 해외증시가 급락하자 코스피지수가 20여일 만에 10%가량 급락해 1,800포인트까지 밀렸다. 대응은 달랐다. 기획재정부는 휴일에도 경제상황 점검회의를 개최했고 경제정책국·국제금융국 등 관련 부서는 휴일을 반납한 채 시장 상황을 보고했다. 정부는 외신 및 신용평가사·외국인투자가 등의 동향 파악과 급격한 자금 이탈을 주시했다. 한국은행도 이주열 총재 주재로 금융·외환시장 점검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긴급 간부회의에서 “당분간 금융위·금감원·한국거래소 등 관련 기관 합동으로 시장점검회의를 계속 운영해 상황별로 필요한 조치를 지체 없이 이행하라”고 지시했다.


지금은 어떤가. 10일(현지시간) 미국 증시가 급락하고 그 여파로 11일 코스피지수가 7년 만에 최대 낙폭(4.44%)을 기록하자 이튿날 긴급점검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회의를 주재한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은 “한국의 대내외 경제 펀더멘털은 여전히 견고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후에도 증시는 연일 연중 최저점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아직 어떠한 시장 상황 점검이나 시그널도 없다.

문재인 정부 들어 주식시장에는 ‘무정부주의’가 팽배하다. 경제성장률·기업실적·환율·유가 등을 포함해 모든 경제지표가 모여 돌아가는 주식시장이지만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통해 기업 이익을 나눠주는 것에만 관심을 뒀다. 증시 안전판 역할을 담당할 국민연금도 기금운용본부장이 무려 15개월이나 공석이었다. 주식시장을 가진 자의 놀이터, 투기판으로만 치부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처럼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였던 고(故)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예금 8,000만원을 1,000만원씩 8개의 펀드에 나눠 투자하며 자본시장으로의 관심을 유도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외환위기 당시 ‘주식갖기운동’에 동참했고 이명박 전 대통령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기 위해 펀드에 가입했다. 문 대통령이 조금이라도 자본시장에 관심을 가진다면 어림잡아 600만명을 넘는 국내 주식시장 개미들의 통곡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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