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이 25일 서울 중구 한은 브리핑실에서 2018년 3·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대해 설명을 마치고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참사’라는 꼬리표가 붙을 정도로 최악의 고용성적을 내고 있는 한국경제에 이번에는 ‘투자절벽’의 악재가 덮쳤다. 투자는 성장을 위한 씨앗이다. 이 때문에 투자급감은 경제의 위험신호다. 이런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장기화로 버팀목인 수출마저 장담할 수 없다. 투자절벽이 길어질 경우 성장엔진마저 꺼져 한국 경제가 심각한 침체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투자확대가 고용 및 소득증가로 이어져 소비를 촉진하는 경로를 통해 경제가 성장해야 하는데 투자부진으로 이런 선순환 경로가 깨졌다”며 “올해 4·4분기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통해 억지로 2%대 후반 성장을 달성하더라도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더딘 규제혁신+부동산 규제에 차갑게 식은 투자=설비투자 감소(전년 대비 -7.7%)는 글로벌 재정위기가 닥친 지난 2013년 1·4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그만큼 기업들이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설비투자 부진은 이미 예견됐다. 기업들의 투자의지를 엿볼 수 있는 기계류 수입이 최근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박양수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장은 “2016년 하반기부터 지난해까지 빠른 속도로 증가한 반도체 설비투자가 조정 국면에 있다”며 “액정표시장치(LCD) 등 디스플레이는 중국 BOE 수출이 반영되면서 상황이 나아진 만큼 설비투자 감소는 반도체 설비의 영향이 크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착시가 사라지자 글로벌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 산업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설비투자의 빈자리를 메워야 할 건설투자는 전년 대비 -8.6% 줄어들며 외환위기 여파가 한창이던 1999년 1·4분기 이후 19년여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냈다. 정부의 부동산 규제와 사회간접자본(SOC) 지출 축소로 인한 건설경기 하락이 원인으로 풀이된다.
더 큰 문제는 설비·건설투자 증가율 모두 2분기 연속 전 분기 대비 마이너스(-)를 지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 분기 대비 수치의 악화는 경기가 하강 흐름을 타고 있다는 징조로 받아들여진다. 민간소비와 정부지출은 전 분기보다 각각 0.6%, 1.6% (전년 동기 대비 2.6%, 4.7%)늘며 다소 개선됐다. 민간소비는 화장품 의류 소비가 늘었고 정부지출은 보장성 확대로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이 확대됐기 때문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정부의 재정 부양이 없었다면 3·4분기 성장률(전년대비)은 1%대로 고꾸라졌을 것이라는 얘기다.
◇‘곳곳에 암초’…2.7% 성장도 어렵다=한은은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올해 우리 경제가 2.7%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3·4분기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한은은 이 전망이 크게 빗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연간 성장률 2.7% 달성을 위해서는 4·4분기 성장률이 3·4분기(전기 대비 0.6%)보다 높은 0.82%를 기록해야 한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3.0% 성장에 해당한다. 박 국장은 “잠재성장률 수준(2.8~2.9%)을 생각하면 (전기 대비) 0%대 중후반 성장률이 부진한 것은 아니다”라며 “4·4분기에는 지자체장 취임 등으로 미뤄진 정부 투자 집행이 이뤄지고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도 나타나면서 성장세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분기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대 성장을 찍은 것은 지난해 3·4분기(3.8%)가 마지막이다. 최근 경기하강 국면에 진입한 점을 감안하면 성장률이 다시 올라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고용부진으로 인해 민간소비 증가가 이어질지 불확실하고 미국과 중국 경기둔화로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 주력산업의 수출 전선에는 빨간불이 들어온 상태다. 유일한 돌파구인 투자도 지지부진한 정부의 규제혁신과 부동산 규제로 인해 극적으로 살아나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기계류 수입, 기계수주, 건설수주와 같은 선행지표들이 일제히 부진하다”며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도 크게 출렁이고 있어 4·4분기 2.7% 달성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능현·임진혁기자 nhkimch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