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격자의 대리수술과 비도덕적 의료행위를 막기 위해 병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여론에 찬반양론이 맞서고 있다.
지난 5월 부산 영도구의 한 정형외과에서 어깨 수술을 받은 40대 남성이 4개월 만에 사망했는데 이 수술을 집도한 사람이 의사가 아니라 의료기기 영업사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료계의 빈번한 대리수술 관행을 비난하는 목소리와 함께 CCTV 설치 요구가 커지고 있다. 경기도는 이달 초부터 도의료원 산하 안성병원 수술실에서 시범적으로 CCTV를 운영하고 있으며 내년부터 도의료원 6개 병원을 대상으로 전면 확대한다고 밝혔다. 설치 찬성 측은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대리수술을 근절하고 환자의 인권을 보호하려면 CCTV 설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의사단체 등 반대 측은 집도의가 감시받는다고 느끼면 소극적으로 치료할 수밖에 없어 결국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의사·환자의 인권 및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우려도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견해를 싣는다.
경기도 모 의료원에서는 이달 1일부터 수술실 CCTV 설치 운영을 위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고 내년부터 경기도 산하 6개 의료원을 대상으로 전면 확대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여론에서는 수술실 CCTV 설치 문제에 관해 많은 갑론을박이 있다. 설치 찬성 쪽의 입장을 들어보면 ‘환자의 알 권리’를 보호하고 인권 침해 방지를 위해 찬성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다. 마취로 인해 인지능력이 떨어질 수 있는 수술실에서 환자들이 느끼는 불안감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꼭 CCTV 설치만이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일까. 더욱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수술실은 아주 중한 환자, 응급 환자를 대상으로도 수술하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상황도 발생하고 급박한 상황이 빈번히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상황에서 전문가로서 순간적인 결정, 수많은 경험에서 얻어지는 판단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고 수술의 결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급박하고 분초를 다투는 현장에서 의사가 누군가에게 감시를 받는다고 느끼면 치료에 소극적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는 당연히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수술실 CCTV 설치 운영으로 환자의 인권 침해,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요소가 많고 의료진 또한 마찬가지로 인권 침해 요소가 있다. 그리고 의사가 감시를 받으면서 수술하는 데 대해 의사의 직업수행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이로 인해 진료가 위축되면 피해는 결국 국민들에게 돌아갈 뿐만 아니라 환자와 의료진과의 신뢰관계가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수술실에 CCTV 설치 운영을 반대하는 것이다.
법정 재판과정의 예를 들어보자. 피의자든 피해자든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재판과정의 영상을 모두 공개해달라고 한다면 과연 공개할 수 있을 것인가. 구형을 하는 검사든 변론을 하는 변호사든 판결을 내리는 판사든 그 과정에서 얼굴표정·몸동작·손동작 하나하나까지 다 녹화되고 공개된다 하면 과연 소신껏 재판에 임할 수 있을 것인가. 만약 그 사건이 전 국민적 공분을 산 민감한 사건이라면 판결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부담스러울 것이 자명하다. 여론을 인식해 ‘정의의 여신’ 디케의 저울에 맞지 않은 판결이 나올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도 국민들이 우려하는 대리수술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점은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부 극소수 의료기관에서 벌어진 이러한 행위에 대해 모든 의사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확대 해석해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은 선량한 대부분의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내몰아 그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최선의 진료를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가 선결 조건이다. 서로가 신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명의가 환자를 보더라도 결코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수술실에서 감시를 받듯 촬영을 당하는 위축된 상태에서 의사는 방어적·소극적으로 집도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됐다 하더라도 환자 본인의 만족 여부에 따라 의료진을 언제든 법정에 세울 근거로 악용되기 십상인 CCTV가 과연 환자의 안전 확보에 도움이 될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1년에 대략 200만건의 수술이 일어난다. 이 중 10% 정도만 디지털 정보로 저장돼도 20만건이다.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작금의 정보유출이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사회현상을 볼 때 정보유출로 환자들과 국민들이 받을 수 있는 충격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의사는 환자의 은밀한 부분까지 접근할 수 있는 직업적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환자의 정보를 보호할 수 있도록 어느 직종보다 높은 윤리적 수준이 요구되는 직업이다. 많은 선진국에서는 의사면허관리기구를 통해 의사들의 윤리수준을 높게 유지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실효를 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려는 시점이다. 감시와 처벌보다는 상호 간 신뢰를 확보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선진 시민의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