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3·4분기 시장에 내놓은 실적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자동차 부문이다. 현대차(005380)의 3·4분기 매출액(24조4,337억원)은 자동차(약 18조8,240억원)와 금융(3조7,140억원), 기타(1조6,640억원)로 구성돼 있다. 현대차는 지난 3·4분기 자동차사업 부문에서 2,52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10년 새 회계기준(IFRS)이 도입된 후 처음이다. 국내 최대 자동차 기업인 현대차의 3·4분기 차량 판매가 손실로 이어졌다는 것은 충격이다.
현대차는 3·4분기 전 세계에서 112만1,228대를 판매했다. 자동차 부문의 적자만 보면 차를 한 대 팔 때마다 22만4,700원가량의 적자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현대차는 이에 대해 “회계상 적자로 표시됐지만 자동차 부문을 연결조정(2,560억원)을 적용해 재산정하면 약 40억원의 흑자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차의 설명대로 해도 문제는 심각하다. 차 한 대를 팔아 3,500원가량 남겼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현대차가 3·4분기 그나마 적자를 면한 것은 금융(1,970억원)과 기타(880억원) 부문의 이익이 발생한 덕이다.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10.3%에서 올해 3·4분기 1.2%로 추락했다. 2010년 새 회계기준이 도입된 후 8년 만에 처음으로 차를 팔아 이익이 남지 않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현대차를 극한의 상황까지 밀어붙인 원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후 중국과 벌이는 무역전쟁이다. 현대차는 세계 최대 시장(2017년 기준·18%)인 중국의 사드 보복 여파에서 벗어나며 올해 3·4분기 누적 기준 판매량이 14.7% 증가했다. 하지만 어닝 쇼크가 일어난 3·4분기만 따로 보면 판매량이 6.2% 감소했다. 이는 무역전쟁 여파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서 현지 자동차 도매판매가 전년 대비 12% 줄어든 영향이 컸다. 무역전쟁의 여파는 중국을 넘어 판매 호조세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유럽까지 덮치고 있다. 현대차는 3·4분기 유럽(5.2%)과 미국(0.8%)에서 판매가 개선됐다. 하지만 9월 글로벌 경기 하강의 여파로 유럽의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보다 23% 넘게 감소하고 있고 미국 도매판매(-4.1%)도 줄어드는 등 판매 확대가 지속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 속도를 높이면서 신흥국 금융시장이 출렁이며 환율이 달러 대비 약세를 보인 것도 현대차의 실적악화에 영향을 미쳤다. 3·4분기 현대차의 공장이 있는 브라질(헤알화 -21%)과 러시아(루블화 -11%), 인도(루피화 -9%) 등의 환율이 원화에 비해 약세를 보이고 있다. 현지 통화 가격이 하락해 최종 수익도 적게 인식된 셈이다.
여기에 미국과 중국은 관세장벽을 높이는 동시에 자국 산업을 육성하는 방식으로 힘 싸움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방식은 중국과 같이 제조업이 강한 한국의 차에도 적용된다. 현대차의 이번 3·4분기 실적에서 이익을 가장 많이 훼손한 부분은 미국에서 판매할 차량에 적용되는 엔진진단신기술(KSDS)의 개발 및 적용과 에어백 리콜과 관련된 비용이다. 구자용 현대차 IR 담당 상무는 “품질 문제를 예방적으로 강화하는 데만 약 5,000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엔진 결함과 관련해 조사했고 이에 현대·기아차는 170만대에 달하는 차량을 리콜하고 있다. 2월에는 에어백 결함과 관련해 15만대 이상 리콜을 실시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선진국 시장에서 안전 관련 진단과 기준이 강화되고 있다”며 “대놓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견제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측면도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4·4분기 미국시장에서 신형 싼타페의 판매 확대와 내년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출시, 중국시장에서도 투싼 페이스리프트(부분변경) 등 SUV 라인업 확대로 수익 회복을 자신하고 있다. 특히 엔진진단신기술 적용 등 품질을 향상하기 위한 일회성 비용 지출이 줄어 실적은 우상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닥을 확인했으니 반등의 속도도 빠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이 수입 차에 대해 최대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실제로 시행할 경우 현대차가 더 궁지로 몰릴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글로벌 무역질서가 바뀌고 있기 때문에 개별 기업이 이를 해결하기는 어려운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문병기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고비용·저효율 구조에 더해 보호무역이라는 해외 변수가 작용하는 모양새”라며 “가격에 의존하는 한국 차는 10%만 관세가 부과돼도 수출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구경우·김우보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