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는 25일(현지시간) 북한을 위해 자금 세탁을 한 혐의로 싱가포르 기업 2곳과 개인 1명에 대한 독자제재를 단행했다. 사진은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지난 16일 재무부에서 금융감독안정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AP연합뉴스
미국 재무부는 25일(현지시간) 싱가포르 기업 2곳과 개인 1명에 대한 독자제재에 들어간다. 북한을 위해 자금 세탁을 한 혐의다.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제재 감시망을 피하는 것을 도운 제3국 조력자들을 제재함으로써 비핵화 견인을 위한 대북 압박을 지속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재무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이 현 제재의 이행을 지속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러한 제재를 가했다고 전했다. 제재 대상은 싱가포르의 무역회사인 위티옹 유한회사, 해상연료회사인 WT 마린 유한회사, 그리고 위티옹 유한회사의 책임자 및 지배주주이자 WT 마린의 관리책임자인 싱가포르인 탄위벵으로 자금 세탁을 비롯해 상품 및 통화 위조, 뭉칫돈 밀반입, 마약 밀거래, 그 외 북한 및 북한의 고위 관리들과 연관된 불법적 경제 활동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혐의를 받는다.
이와 함께 법무부는 탄위벵에 대해 기소 사실도 공개했다. 재무부는 현 국제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고 안보리 결의안을 이행하려는 미국의 헌신을 보여주는 조치이며, 북한이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불법적 금융 시스템을 활용하는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재무부는 미국이 북한의 불법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그 어떤 개인이나 기관, 선박에 대해서도 국적과 상관없이 제재를 부과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탄위벵과 그의 공모자들은 북한을 대신해 미국의 금융 시스템을 통해 자금 세탁을 고의적으로 했다”며 “전 세계의 각 정부와 금융기관, 기업들은 이러한 수법을 극도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는 이러한 기만적 관행을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FFVD)에 깊이 전념하고 있으며, 재무부는 그때까지 제재이행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재무부에 따르면 탄위벵과 최소한 1명 이상의 회사 동료는 2011년께부터 수년간 북한을 대신해 수백만 달러의 물품을 계약했다. 탄위벵은 규제망 및 조사를 피하고자 지불 추적을 교란시켰고 대북 금융 제재를 피하려고 노력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탄위벵과 위티옹 측은 계좌 이체가 거부되자 한 차례 이상 뭉칫돈을 직접 한 북한인에게 건네기도 했다.
WT마린은 위티옹과 밀접하게 연계된 회사로, 지난해 이 회사가 운용·관리하는 선박들이 북한 정권을 지원하는 불법적 경제 활동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무부는 탄위벵과 이 회사들이 지난해 11월 2일 재무부 금융범죄단속반(FinCEN)이 북한의 국제 금융 시스템 활용 실태에 대해 발령한 ‘주의보’에 포함된 행위에 가담했다고 밝혔다.
재무부는 무엇보다 이번 조치가 북한이 제3국의 기업을 이용, 유령회사나 위장회사, 또는 아시아 타 지역 내 해운·무역 회사 등을 통해 지불금을 잘게 쪼개 세탁하는 방식에 대해 경고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금융 대리인들은 제3국 기업을 활용해 위장·유령회사들을 설립하는 한편 이들을 통해 미국 및 국제 금융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은행 계좌도 개설하고 있다. 이번에 제재 대상에 포함된 싱가포르 회사 2곳에서 탄위벵이 한 역할 역시 북한과 연계된 금융 조력자들이 같은 소유주나 관리자의 이름으로 된 복수의 기업을 세워 활용하는 실태를 보여준다.
재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제재로 인해 그 대상에 오른 기업들과의 거래가 금지된다면서 모든 회원국은 북한 선박과의 선박 대 선박 환적 및 북한과의 물품 거래를 돕거나 조력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 내용을 다시 강조했다.
제재에 따라 이들 법인과 개인의 미국 내 자산(선박 2개 포함)은 동결되며 미국민이 이들과 거래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이번 제재는 지난 4일 북한과의 무기 및 사치품 불법 거래를 이유로 터키 기업 한 곳과 터키인 2명, 북한 외교관 1명에 대한 독자제재를 단행한 이후 21일 만에 단행됐다. 특히 해당 제재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앞두고 이뤄져 논란이 일었다.
내년초 열릴 것으로 보이는 제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가 실무협상 채널 가동에 아직 착수하지 못하는 등 북미 간 기싸움이 여전한 가운데 단행된 이번 제재는 대북 압박을 지속해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겠다는 미국의 입장을 강화하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종전선언에서 제재완화로 무게중심을 옮기며 공세를 강화하고 있는 북한의 반응이 주목된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