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에 또 한 차례 문화적 변혁이 일어난다면 대기업 중심의 투자 시스템에서 해방되고 독립영화가 구원투수로 제 역할을 했기 때문일 겁니다.”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장호(73·사진) 감독은 26일 서울 강남 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한국 영화 99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국 영화가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놀라운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영화감독이 연기부터 편집·현상까지 책임져야 하는 1인 제작 시스템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화계는 한국 최초의 영화 ‘의리적 구토’가 상영된 1919년 10월27일을 기념해 이날을 ‘영화의 날’로 제정했고 내년이면 한국 영화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 영화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 영화의 역사와 영화인을 재조명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로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영화평론가협회·한국영화학회가 주관하며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후원했다.
당초 이 신임 위원장은 환영사 및 인사말을 하기 위해 연단에 섰지만 그가 내뱉는 말들은 축하보다 쓴소리에 가까웠다. 이 위원장은 “대기업 중심의 제작 시스템을 갖춘 일본이나 미국과 달리 영화 산업 전성기 전의 한국은 작가의식과 창의력을 갖춘 감독들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을 누렸다”며 “그러나 지금 우리 후배들은 대기업 중심의 분업화된 시스템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대기업 중심의 투자·제작 시스템이 창작자들의 도전과 실험정신을 제한한다는 이 위원장의 평소 지론대로였다.
그는 한국 영화 100주년이 고난 속에서 역사를 써온 선배들과 새로운 기원을 열고 있는 후배들이 화합하고 교류하는 원년이 돼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가난한 역사가 우리의 힘이었다는 것”이라며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감사하고 후배들은 열악하고 불우한 환경에서도 꾸준히 성장한 선배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외롭지 않게 배려해주는 해가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영화진흥위원회는 전날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제1차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이 감독과 배우 장미희를 공동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이 위원장은 한국영화 100년 중 절반에 가까운 기간을 영화 현장에 바친 한국 영화사의 산증인이다. 이 위원장은 데뷔작 ‘별들의 고향(1974)’으로 46만 관객을 동원해 당대 한국 영화 흥행의 신기록을 세우며 영화판에 발을 들였다. 특히 ‘바람불어 좋은 날(1980)’ ‘어둠의 자식들(1981)’ ‘과부춤(1983)’ ‘바보선언(1983)’ 등을 통해 한국의 가난과 억압을 고발하는 리얼리즘 영화로 한국 리얼리즘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고 ‘무릎과 무릎 사이(1984)’ ‘어우동(1985)’ 등으로 예술적 에로티시즘을 탐구하기도 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