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여는 수요일] 느릅실 할머니와 홍시

- 신광철(1959~)


인생이 짐이라고

아니야, 사랑이야

인생은 홑이불 같이 가볍기도 하지만

비에 젖은 솜이불 같기도 한 거야

등이 굽었지만 앞산보다는 덜 굽은

진천 느릅실 할머니가 장작을 나르며 말했다

인생은 마음먹기에 달렸지

인생을 등에 지면 짐이 되고

가슴으로 안으면 사랑이 되는 거야

짐이 홑이불처럼 가벼워지지

농익은 홍시가 떨어지고 있었다


석양에는 홍시의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자식도 등에 지면 짐이지만

자식을 가슴으로 안아봐

하나라도 더 주고 싶고

안타까워 내 뼈 부서지는 것도 모르지

고생이 오히려 고마울 때가 있지

그것이 사랑 아니겠어

저런, 느릅실이라고 해서 먼 마을 이야긴 줄 알았더니 우리 마을 이야기구만요. 아니, 제 고향이 느릅실은 아니고 중고개라는 마을인데요. 저 할머니 안다니까요. 쇠죽갈고리 같은 허리로 장작 안고 가는 저 분 말이요. 쪼그려 앉아 나물 다듬을 때면 무릎이 귀를 넘던 그 분 말이요. 알다마다요. ‘늬들 고생하며 큰 거 생각하믄 머리카락 하나 빠지는 것도 아깝다’던,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가 바로 그 분이요. 아, 진짜 진천 느릅실 할머니 이야기라구요? 어쩌면 세상에 없는 우리 어머니가 도처에서 목격되고 있을까요. 모든 어머니는, 어머니로군요. <시인 반칠환>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