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브랜드 인문학] 우리가 '샤넬 향수'를 뿌리는 이유는

■김동훈 지음, 민음사 펴냄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1930~2002)는 일찍이 문화적 취향과 계급의 상관관계를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는 1979년 펴낸 저서 ‘구별 짓기’에서 상류층의 문화를 끊임없이 모방하면서 계층 상승을 꿈꾸는 인간의 숨은 욕망을 갈파했다. 우리가 더 좋은 옷, 더 좋은 신발에 늘 눈길을 빼앗기는 이유는 단순히 그 물건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하층민과의 ‘구별 짓기’를 통해 상류층에 소속되고 싶은 욕망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브랜드 인문학’은 명품 브랜드의 역사와 인간 보편의 심리를 엮어가며 흥미로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낸다. 저자인 김동훈은 오랫동안 서양 고전을 연구해온 학자로 ‘별별명언: 서양 고전을 관통하는 21개 핵심 사유’ 등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성공한 디자이너였던 샤넬은 사업을 함께 키운 연인 보이 카펠이 사고로 죽고 나서 한동안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그랬던 그는 부모 없는 고아로 수녀원에서 자랐던 어린 시절 수녀들이 가꾸던 시나몬과 레몬의 향기를 떠올려 만들어낸 향수 ‘넘버 5’로 보란 듯이 재기한다. 샤넬 브랜드의 이 대표적인 제품이 풍기는 화려한 이미지는 관능미의 대명사인 배우 메릴런 먼로를 통해 한층 강화됐다. 먼로는 “침대에서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한 뻔뻔한 기자의 질문에 “난 아무것도 입지 않아요. 오직 몇 방울의 ‘샤넬 넘버 5’뿐이지요”라고 대답하며 대중의 주목을 받았다.

또 다른 명품 브랜드인 프라다는 창업 이후 3대째에 이르러 세계적인 회사로 성장했다. 창업주의 손녀였던 미우치아 프라다는 극렬한 페미니스트였다. 프라다는 기존의 질서를 곧이곧대로 수용하지 않는 기질을 바탕으로 여성의 몸매를 육감적으로 드러내는 당대의 유행을 거부하고 자유로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며 회사를 가파른 성장 가도 위에 올려놓았다. 저자는 이 외에도 구찌·페라가모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의 사례를 살핀 끝에 이들 기업이 “소속감을 통해 정체성을 형성하려는 소비자의 욕망이 브랜드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제대로 파악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회사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진단한다. 1만8,0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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