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 사립유치원 명단 공개로 온 나라가 벌집 쑤신 듯 발칵 뒤집어진 상황에서도 학부모들의 ‘유치원 입학전쟁’은 어김없이 시작됐다. 내년부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부모들은 집 근처 유치원의 입학설명회 일정을 챙기는 한편 온라인 입학지원 시스템인 ‘처음학교로’를 통한 지원방법도 익히느라 분주하다. 국공립 유치원이나 원하는 사립유치원 입학에 실패하면 영어유치원이라는 제3의 선택지를 놓고 주판알을 굴려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학부모들의 속을 태우는 것은 유치원 입학설명회다. 통상 10월 말께는 유치원 입학일정이 확정돼 학부모들에게 통보됐어야 하지만 올해는 유치원 비리 문제가 터지면서 입학설명회 날짜가 기약 없이 밀렸다. 답답한 마음에 문의전화를 하면 ‘연락처를 남겨주면 11월 중 일정을 확정한 후 연락하겠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다. 세 살 딸을 둔 윤지영(33)씨는 “회사를 다니고 있어 어떻게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야 한다”며 “아이 친구 엄마들을 통해 알음알음 유치원 설명회 일정을 모으고 있지만 수가 너무 적어 지역 내 유치원에 일일이 다 전화를 한다”고 하소연했다.
각 지역 맘카페도 유치원 설명회 일정을 수집하느라 ‘정보전쟁’이 치열하다. 한 명이 인근 유치원 입학일정을 공유하면 다른 회원들이 댓글을 달아 서로 여러 유치원 입학일정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올해 교육청 감사 명단에서 빠진 유치원들은 이미 상담일정이 꽉 찬 상태다. 서울 서대문구 A유치원 관계자는 “일정을 확정하지도 않았는데 학부모 문의가 하도 많아 2~3명씩 짝을 지어 방문하라고 했다”고 귀띔했다. 설상가상으로 일부 병설유치원의 경우 별도 설명회 없이 곧바로 등록을 안내하는 경우가 많아 학부모들은 유치원 평판과 상세정보까지 수소문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른바 ‘영어유치원’으로 알려진 유아영어학원도 학부모들의 ‘위시리스트’에 올랐다. 영어유치원이 원비를 비싸게 받는 만큼 급식·수업자재·시설 등 모든 면에서 처우가 좋다는 생각에서다. 서울 강남구 학원가에 따르면 최근 유아반을 운영하는 영어학원의 상담문의는 하루 4~5통에서 평균 10통까지 늘었다. 현행법상 정식 교육기관이 아니어서 누리과정 지원을 받지 못하는데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어유치원을 찾는 부모들이 늘었다는 전언이다.
상당수 학부모는 올해부터 ‘처음학교로’ 사용법도 새로 배우고 있다. 지난해 2%에 불과했던 사립유치원의 처음학교로 참여율이 올해는 30%를 넘겼기 때문이다. 국공립과 사립유치원을 동시에 지원할 기회를 잡으려면 최소한 구동법이라도 익혀야 하는 실정이다. 조성실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가는 “임신·출산·육아 전 과정에서 학부모들은 지속적으로 정보에서 소외되고 스스로 뛰어다녀야 한다”며 “교육부와 일선 교육청들이 유치원 사태를 이 지경까지 만든 것처럼 유아교육 문제에 대해 계속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