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남미 최대국인 브라질을 이끌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당선인이 벌써부터 대외정책에서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중남미 외교지형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리는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친미 성향의 남미 ‘우파 벨트’를 기반으로 이스라엘과 이탈리아 우파 포퓰리즘 정부와의 관계 강화에 나서며 글로벌 우파 연대의 한 축을 맡기 위해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반면 최대 교역국인 중국에 강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쿠바와는 외교관계 중단 가능성까지 시사하는가 하면 남미 다자무역협정인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와도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보우소나루 당선인은 브라질 일간지와 가진 인터뷰를 통해 “‘더 많은 의사들(Mais Medicos)’ 프로그램에 따라 브라질에 있는 쿠바 의사들이 월급을 25%만 받고 자녀들과 같이 사는 것도 금지된다”면서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외교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강조했다. 그가 지목한 ‘더 많은 의사들’ 프로그램은 빈곤 지역 의료 서비스 확충을 위해 좌파 노동자당(PT)의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정부 시절에 시작된 것이다.
공산당 독재국인 쿠바와의 외교관계 단절 가능성을 시사한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의 이전 정권과 달리 노골적인 친미를 표방하며 우파 정권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대선 기간에 “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숭배하는 사람”이라며 미국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던 보우소나루는 최근 이스라엘 주재 브라질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밝히는 등 외교정책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을 사실상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그의 당선 소식에 해외 정상 중 가장 먼저 축전을 날렸던 트럼프 대통령도 이후 보우소나루 당선인과의 통화에서 “무역과 군사, 그 밖의 모든 사항에서 긴밀히 협력할 것에 동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트럼프·보우소나루의 ‘브로맨스’가 싹트면서 미국과 브라질·콜롬비아 간 군사·경제 동맹 수립 가능성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1일 “미국 정부가 중남미 지역의 안보와 경제를 위해 브라질·콜롬비아와 동맹관계를 형성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언급했다.
또 미국의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탄생한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와 남미국가연합 등에 대해 보우소나루가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일각에서는 그가 2012년 6월 멕시코·페루·콜롬비아·칠레가 출범시킨 경제동맹인 태평양동맹으로 경제노선 방향을 돌리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새 정부의 경제수장을 맡을 파울루 게지스 내정자는 “아르헨티나나 메르코수르를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으며 유력한 정무장관 후보인 오닉스 로렌조니 연방하원의원은 칠레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여기에 주요 교역국인 중국·아랍권과의 관계도 악화 일로를 걸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브라질 재계는 갑작스러운 통상환경 변화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당선인의 친이스라엘 노선에 아랍·브라질상공회의소의 후벤스 하눈 소장은 이날 “(예루살렘으로) 대사관이 이전되면 브라질과 아랍권의 통상관계가 큰 위기에 빠질 것”이라며 “전 세계 국부펀드의 40% 이상인 아랍권은 브라질의 도로·철도·전력 등에 대한 투자에 관심이 있으나 대사관 이전으로 투자 계획이 취소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도 “중국은 브라질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며 브라질의 새 정부가 트럼프의 노선을 따르고 중국과의 통상관계를 중단하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연일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