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징용 판결 보복 나섰나] LNG선 수주서 물먹은 日...다른 업종까지 '딴죽' 걸수도

■'대우조선 지원' WTO 제소
보조금 이슈 무혐의 판결 났지만 日 '신경전' 부리며
국내 자동차 美시장 리콜 사태 등에 영향력 행사 우려
"對日 수출 품목 적어 분쟁 확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미중 무역분쟁 속 韓·日 반목은 전략상 손해" 지적도


6일 조선 업체에 대한 우리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금지한 보조금 지급이라며 일본 정부가 WTO에 제소를 추진할 것이라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만약 사실이면 올해 3년 만에 수주량 1,00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를 돌파하며 회복 조짐이 뚜렷한 우리 조선 업계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고부가가치 선박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선 수주 경쟁에서 한국에 철저히 밀렸다. 일본이 한국 조선 업체에 대한 견제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재계는 특히 이번 움직임이 지난달 30일 우리 대법원이 강제징용된 피해자를 상대로 일본 기업에 배상책임을 지운 판결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배상 판결로 한 방 먹은 일본의 맞대응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일본의 ‘몽니’가 자칫 다른 산업으로 번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재계의 한 고위임원은 “WTO가 이미 무혐의 판결을 내린 보조금 지급 이슈를 일본이 다시 꺼낸 것은 실질적 ‘페널티’보다는 일종의 ‘신경전’에 가까워 보인다”며 “다만 앞으로 미국의 우리 자동차 업체에 대한 리콜 사태 등에 있어 일본이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수주 1위 한국에 찬물 끼얹나=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가 문제 삼는 것은 우리 정부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공적자금 지원이다. 한국 정부가 약 1조2,000억엔(약 11조9,000억원)의 공적자금을 대우조선해양에 투입함으로써 낮은 가격으로 선박 건조를 수주해 시장가격을 왜곡시켰다는 것이다.

조선 업계는 일본이 우리 기업 발목 잡기에 나섰다고 보고 있다. 업황이 완전히 반등하지 못한 가운데 어떻게든 우리 몫을 뺏으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최우선 타깃은 LNG선. 국내 ‘빅3’는 올해 나온 52척 선박 중 43척을 쓸어갔다. 일본에 돌아간 몫은 1척뿐이다. 무엇보다 환경규제 등으로 LNG선 선가는 오름세가 확연하다. 일본이 보조금 카드를 꺼낸 이유다. 조선 업계의 한 임원은 “선주 입장에서 소송이 걸린 업체에 발주하는 것은 꺼림칙할 수밖에 없다”며 “다만 한국이 LNG선과 관련해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업체로서는 모처럼 만에 훈풍이 불고 있는 와중이라 더 꺼림칙하다.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는 이날 올해 한국 업체의 수주 잔량이 1,026만CGT(10월 누계 기준)로 세계 1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우리 기업이 전체 수주의 45%를 차지하며 중국(31%) 등을 제쳤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일본이 잔칫날에 재를 뿌렸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적 복선 깔렸다” 분석도=일본의 WTO 제소가 현실화돼도 우리 기업이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낮다는 게 지배적인 관측이다. 이미 수년 전에도 유럽연합(EU)이 똑같은 이유로 한국을 WTO에 제소했지만 무혐의로 판결이 났다. 당시 한국 정부는 조선업 구조조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고 관련 회사가 파산할 경우 엄청난 피해를 입을 채권은행단의 ‘상업적 판단’에 따라 대출금 출자전환, 채무상환 재조정 등의 조치를 취했다는 의견을 개진해 결국 받아들여졌다.

그런 만큼 조선 업계는 이번 조치에 다른 복선이 깔렸다고 해석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의 제현정 박사는 “조선업 보조금 논쟁이 정리된 사안이고 해묵은 이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대법원 판결로 화가 난) 일본 정부가 딴죽을 걸 수 있는 업종을 찾다가 ‘조선’을 선택했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과거에도 일본은 우리가 먼저 반덤핑 등에 제소하면 맞대응하는 식의 움직임을 보여왔다”며 “파국을 원하기보다는 일종의 힘 겨루기로 본다”고 짚었다.

◇“최악 사태까지 가지 말아야”…불안한 재계=전문가들은 한일 간에 무역분쟁이 확전 양상으로 갈 확률은 높지 않다는 입장이다. 당장 무역 구도만 봐도 그렇다. 우리 쪽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품목은 많지 않다. 우리 주력이라 할 자동차·가전만 해도 일본에 수출하는 물량이 적다. 일본이 굳이 우리에 해코지한다면 반도체 장비·소재 등 부품의 한국 수출 금지에 나설 수 있지만 자국 업체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확전에 나설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제 박사는 “미국만 해도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위반하고 있다는 명분이 확실해 자국 업체의 수출 금지도 용인하는 것”이라며 “역설적으로 (WTO 제소 조치는)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모색해보자는 일본의 화해 제스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시장에서 우리 자동차의 리콜 사태 등에 일본이 물밑에서 입김을 행사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익명의 한 관계자는 “우리 정부의 처신이 문제”라며 “가뜩이나 미중 무역분쟁으로 힘들어 다른 나라와 공조를 해도 모자랄 판국인데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척지는 것은 전략상 이로울 게 없다”고 꼬집었다. /이상훈·김우보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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