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내셔널프레스빌딩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원유 거래 차단 등 대(對)이란 제재 전면 재개를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DC=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제재를 전면 복원하자 미국·유럽 간 ‘대서양동맹’과 자국의 경제적 이익 사이에서 유럽 국가들이 주판알을 튀기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대(對)이란 교역 규모만 지난해 기준 250억달러(약 28조원)에 이를 만큼 유럽 각국 정부에 이란은 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하지만 마냥 자국의 이익만 챙기기에는 미국의 정치·경제적 보복이 두려운 상황이다. 유럽 각국 정부는 미국의 제재를 ‘슬기롭게’ 회피할 각종 방법들을 고심하고 있지만 큰 진척은 보이지 못하는 실정이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의 대이란 제재 재개로 유럽 각국은 ‘제2해결책(workaround)’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유럽은 지난 2015년 7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과 EU·이란 등이 체결한 다자협상인 ‘이란 핵 합의’를 종전대로 지켜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신 미국의 이란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특수목적법인(SPV)’을 만드는 등 묘안도 동시에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상황이 순탄치만은 않다. NYT는 “이란 핵 합의를 자국의 국익에 중요한 사안으로 여기는 유럽으로서는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에 적대감(antagonizing)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선에서 묘안을 모색해왔지만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국가들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피해갈 묘안으로 내놓은 ‘SPV’는 이란의 원유·가스 수출대금을 이란의 수입대금과 상계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물물교환’ 방식의 결제체계다. 문제는 미국의 보복이 두려워 SPV를 자국에 두겠다고 선뜻 나서는 국가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덴마크와 영국도 변수다. 대이란 교역 규모가 크지 않은 영국은 굳이 이란 문제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싶지 않은 모양새다. 덴마크에서 발생한 이란 배후 암살 시도 등도 유럽의 단결을 깰 수 있는 요인으로 부상했다. 지난달 말 덴마크 정보당국은 이란 정보기관 요원들이 자국에 거주하는 3명의 망명자를 암살하려고 해 이를 저지한 사실을 발표했다. NYT는 “이 같은 이란의 테러 기도가 유럽이 이란 핵 합의에서 탈퇴하리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지만 (이란 제재) 완화를 향해 나아가는 태도를 약화시킬 것은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 정부의 본격적인 제재 가동에 따라 현실적으로 유럽의 대이란 교역 규모가 20∼30% 정도 위축될 우려는 유럽 회원국 사이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다. 미국과 거래하는 유럽의 거대 기업들이 제재 위반을 피해 이미 이란에서 철수했거나 철수 중이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