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규
한 쌍의 커플이 카페에 들어선다. 남녀가 선택한 곳은 두 명이 앉기에는 너무 넓다 싶은 테이블. 그런데 이들의 위치가 묘하다. 테이블의 중간이 아니라 한쪽 구석에 앉는다. 얼마 뒤에는 다른 연인들이 들어와 같은 테이블의 남은 자리를 차지한다. 다른 자리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다. 그럼에도 누구도 앉지 마라, 앉아도 되느냐 묻지 않는다. 그저 바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를 함께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적어도 카페 테이블에서 그들은 서로에게 공평했다. 내가 차지한 자리를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다는 50대의 고정관념은 산산이 깨졌다. 괜히 ‘꼰대’ 소리를 듣는 게 아니다.
테이블의 공평함이 사회로 나와도 그대로 재연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하기 힘들다.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들은 모순투성이인 세상에 내던져진다. 똑같은 일을 해도 어떤 이는 억대 연봉에 4대 보험도 보장받지만 누구는 그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사회보장도 없이 살아간다. 같은 날 입사를 해도 초고속 승진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2년 후 회사를 떠나야 하는 이가 있다. 조선 후기 연암 박지원의 소설 속 허생이 낡아빠진 사회를 피해 섬으로 갔듯이 카페 속 커플도 아이러니가 판치는 사회를 피해 카페로 왔을지 모른다.
불공평은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8월부터 올 8월까지 정규직 근로자가 3,000명, 비정규직 근로자는 3만6,000명 늘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최저임금 상승 등으로 비정규직이 늘었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늘어난 3,000명의 정규직을 차지한 행운아들이 누굴까. 지인이 다니는 공기업에는 특별한 노사 합의 사항이 존재한다. 직원이 정년퇴직하면 그가 지명하는 다른 사람을 입사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년이 된 그 역시 자신의 자녀를 경리직 직원으로 밀어 넣었다. 말로만 듣던 고용세습이다. 지인도 이 점이 걸렸는지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중소기업으로 가고 비정규직이 되면 평생 대접받지 못하고 고생할 것이 뻔한데 누군들 자식을 그 고생의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싶을까.
꽃길이 눈앞에 있는데 굳이 가시밭길을 갈 필요는 없다는 그 생각은 내가 가진 자리를 자식과 가족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리를 잡는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봤듯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친인척들이 대거 정규직으로 채용됐고 국내 굴지의 금융기관에서 회장을 지냈던 이는 자격 미달인 손자를 청탁을 통해 정식 사원으로 밀어 넣었다. 이제 늘어난 3,000명의 정규직은 기득권자가 아니면 넘볼 수 없는 신의 영역이 됐다. 불공평이 낳은 불공정이라는 괴물이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공허하기만 하다. 길어야 1년짜리 일자리 대책이 전부다. 질 좋은 일자리를 외치던 존재는 이제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다. 정부까지 공평하지 않은 구조에 일조했으니 더 좋은 곳을 차지하기 위한 편법과 불법이 더 판칠 게 뻔하다. 공정함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공평하지 않고 공정하지도 않은 현실에서 정규직을 빼앗긴 이들이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뿐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공부’였다. 지금은 그 자리를 ‘직업’이 차지하고 있다. 19세 이상 24세 미만은 10명 중 4.5명이 취업 걱정으로 밤낮을 지새운다. 당연히 결혼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전체의 절반도 안 된다는 설문 결과는 당연할 수밖에 없다. 불공평과 불공정은 가족까지 해체한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공평이 불공정을 낳고 다시 불평등을 심화하는 이 끝없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면 된다. 수십년 동안 우리 경제에 깊게 뿌리박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유연성을 부여해야 하는 일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도 몇 년 하다 마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파트너 관계가 되도록 틀을 잡아야 한다. 쉽지 않지만 멈춰서는 안 될 일이다. 기성세대가 불공평과 불공정의 명맥을 끊어야 새 세대는 제대로 된 기회를 누릴 수 있다.sk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