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숲엔터테인먼트
배우 김재욱과 김홍선 감독의 만남은 역시 옳았다. 지난해 ‘보이스’에서 모태구라는 역대급 캐릭터를 만들어냈던 두 사람은 1년 만에 다시 만나 한국 장르물 드라마의 한 획을 그은 ‘손 the guest’를 탄생시켰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 공연까지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왔던 김재욱이 휴식 대신 ‘손 the guest’를 선택한 건 배우로서 오랜 시간 느꼈던 갈증 때문이었다. 오컬트와 엑소시즘. 한국 드라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색깔의 ‘손 the guest’는 배우로서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쉬고 싶었던 찰나에 김홍선 감독님이 저를 찾아주셨다. 기본적으로 오컬트 장르를 좋아한다. 미국이나 영국같이 시즌제 드라마를 잘 만드는 나라에서는 예전부터 제작이 됐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잘 만들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원팀 시스템이라는 게 좋았다. 이런 작품은 세계관을 디테일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감독님이 처음부터 그렇게 시스템을 만들어서 시작하셨다 그런 부분들이 잘 맞아 떨어졌다.”
그가 연기한 최윤은 악령을 쫓는 구마 사제다.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낯선 캐릭터다. 생전 본적도 없는 구마 의식을 어색함 없이 표현하기 위해 김재욱은 직접 필리핀으로 가 현지 구마 사제까지 만나며 철저한 사전 조사를 거쳤다.
“감독님이 추천해주신 작품들을 많이 참고했다. 연출부에서 구마사제로서 공부해야 할 자료들을 방대하게 모아주셨다. 촬영 시작 전에 필리핀에 가서 실제 구마사제로 활동하는 분을 만났다. 며칠 동안 그 분이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강의도 듣고 천주교의 입장에서 악령에 대한 접근법 등을 공부했다. 필리핀에 방문한 후 안 보였던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독님도 구마의식을 ‘손 the guest’의 세계관에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셨는데 그 만남을 통해 많이 구체화 시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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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준비했지만 역시나 만만치 않은 캐릭터였다. 특히 극중 최윤이 첫 구마 의식을 행했던 ‘김영수(전배수) 구마 신’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전배수 선배님과 했던 첫 구마 의식 신이 제일 힘들었다.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아무런 상상이 되지 않았다. 빙의자가 물을 뿜는 장치도 처음 사용하는 거라 시행착오를 겪었다. 옆에서는 전등이 깜빡이고 뒤에서는 박일도가 나오고 나는 피를 흘리고. 공도 많이 들이고 그만큼 시간도 오래 걸렸던 신이다. 거의 10시간 넘게 찍었던 것 같다. 가장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 신을 끝내고 나서 자신감을 얻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구마 의식을 표현해야 하는지 알겠더라.”
‘손 the guest’는 극 초반 긴장감과 몰입감을 높이기 위해 빙의자들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됐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윤화평(김동욱), 최윤, 강길영(정은채)의 관계가 더욱 단단해지면서 세 인물들의 변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작품 전체를 위해 캐릭터의 표현을 자제해왔던 배우들의 연기도 한층 풍성해졌다.
“그렇게 변해가는 최윤을 기다렸었다. 초반에는 인물이 이 세계관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더 중요했다. 디테일한 표현보다는 다른 배우들과의 호흡과 극이 진행되면서 최윤이 겪는 지점을 집중적으로 봤다. 작품의 속도감을 생각해봤을 때 처음부터 캐릭터의 세세한 부분을 잡아가면 템포가 끊어지고 무거워졌을 거다. 그래서 초반부터 캐릭터를 표현하는 건 어느 정도 포기했었다. 하지만 중간부터는 최윤이 입체적으로 변해가는 신들이 많이 나와서 갈증이 풀렸다. 거짓말도 못 했던 친구가 나중에는 동료들을 위해 거짓말을 하고, 사제로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이성을 잃어가는 그런 과정들이 최윤을 더 풍성하게 표현해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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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the guest’는 처음부터 끝까지 큰 귀신 ‘박일도’를 쫓는 이들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결국 박일도는 잡히지 않았다. ‘세상이 혼탁하고 인간이 타락하면 손은 또 올 것이다’라는 윤화평의 의미심장한 말만 남긴 채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손 the guest’다운 완벽한 열린 결말이었다.
“마음에 드는 결말이었다. 시즌2를 암시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보다는 메시지가 좋았다. 박일도는 악의 상징이고 악은 인간이 가진 본성이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분노하는 사람에게 마음의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악령을 받아들였을 때 빙의자가 된다는 이론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그 메시지가 엔딩의 내레이션에 들어있었다. 악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는 없지만 이게 단순히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된다는 것. 이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서 뿌듯했다.”
김재욱은 지난해 ‘보이스’의 모태구 역으로 장르물 악역의 진수를 보여줬다. 더이상 이를 뛰어넘는 캐릭터가 나올 수 있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캐릭터였다. 하지만 모태구를 넘어서느냐 넘어서지 못하느냐는 김재욱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작품 안에서 있어야 할 존재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인생캐릭터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연기하는 재미가 굉장히 달랐다. 모태구는 개인의 순전히 개인의 즐거움이 컸던 인물이다. 나도 연기하면서 타인보다는 개인에게 집중하고 파고들면서 연기했다. 반면 최윤의 곁에는 늘 동료가 있었고 외롭지 않았다. 완전히 다른 결의 인물이었어서 연기하면서도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동안 만나고 싶었는데 못 만났던 장르나 캐릭터들을 타이밍 좋게 잘 만났던 것 같다. 시청자분들이 몰입하면서 작품을 볼 수 있게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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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구와 최윤 모두 김재욱의 연기로 만들어졌지만 김홍선 감독의 연출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캐릭터다. 그에게 김홍선 감독은 어떤 존재일까.
“김홍선 감독님은 최고다. 내 배우 인생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분이다. 배우의 특징과 성향을 파악하고 연출가로서 이 배우를 어떻게 끌어내야 하는지 그런 걸 잘 알고 나와 맞는 분이다. 나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좋은 연기를 펼칠 수 있게 권한을 주고 믿어주시는 연출가다. 감사하고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이렇게 말해달라고 하셨다. (웃음)”
김재욱은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대신 어떤 작품이든 그 안에서 최대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 배우가 되려 노력한다. 그것이 결국 좋은 작품을 만드는 방법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또 다른 캐릭터를 만나 새롭게 돌아올 김재욱의 앞으로가 기대된다.
“배우로서 특별한 계획을 세우는 편은 아니다. 좋은 작품은 찾는 게 아니라 만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어떤 작품이 어떤 타이밍에 와도 자신있게 할 수 있을 만큼 스스로를 잘 컨트롤하고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다 보면 조만간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글을 만날 수 있을 거다.”
/김다운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