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안전이 사치재인 사회

이혜진 건설부동산부 차장


얼마 전 서울 변두리에 살 때였다. 주변에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40만원 안팎의 원룸들이 수두룩했다. 전용면적 6~8평에 작은 화장실과 부엌을 갖춘 전형적인 ‘집 장사’ 원룸이었다. 물론 방 크기와 상태에 따라 더 저렴한 방도 많았다. 그러나 임차인을 오랫동안 구하지 못해 빈방도 꽤 있었다. 대학가 앞 원룸이나 고시원의 방값이 비싸 못 살겠다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의아했다. 혼자 살기 넉넉한 방이 이렇게 많은데 왜 좁디좁은 고시원에 그 돈을 주고 살까. 나중에야 깨달았다. 고시원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보증금 몇 백만 원은 너무 큰 돈이었다. 1~2년씩 하는 계약기간도 당장 다음달을 기약할 수 없는 이들에게 부담스럽다. 이들에게는 조금 넓은 방보다는 극단적으로 좁더라도 단돈 몇 만 원이라도 싼 곳이 우선이다. 지금도 부동산 인터넷 중개 사이트에는 저렴한 원룸이 많이 나와 있지만 이곳마저 들어갈 수 없어 고시원·여인숙 등을 전전하는 이가 37만명이나 된다.

서울 종로 고시원 화재는 우리 사회의 취약한 단면이 슬프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우선 고시원에는 더 이상 고시생이 살지 않는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이곳에 틀어박혀 공부할 개천 출신의 고시생은 사라졌다. 대신 중년의 일용직 노동자, 저임금·비정규직 직장인들로 채워졌다. 그나마 도심의 고시원은 어느 정도 방세를 낼 정도의 노동 능력이 있는 이들이나 살 수 있다. 그마저도 안되는 이들은 쪽방·비닐하우스 등으로 밀려난다.


저소득은 불편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도 다시 확인됐다. 되풀이되는 노후 건물이나 숙박시설의 화재·붕괴 사건은 싼값을 치를 수밖에 없는 이들에게 ‘안전은 사치재’라는 지독한 현실을 보여준다.

사회 취약계층의 희생 후 사회적인 분노, 재발 방지책 찾기도 반복되는 현실이다. 국토교통부는 앞서 ‘취약계층·고령자 주거지원 방안’으로 고시원 리모델링 시범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고시원 건물을 사들여 원룸으로 개조한 후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사업이다. 예컨대 1~2평짜리 방 30개가 있던 고시원 건물을 사들여 5~6평짜리 원룸 10개로 개조해 현 고시원 월세보다 싸게 준다는 계획이다. 법정 최저 주거기준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면적이 이 정도는 돼야 한다는 것이 국토부의 설명이다. 공공임대 사업에서 쪽방을 제공했다가는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난타를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업이 현실적으로 고시원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15만명에게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시작도 하기 전에 의구심이 든다. ‘닭장’ 고시원 몇 채를 번듯한 원룸으로 개조한다면 장관이 가서 입주자들과 사진을 찍고 홍보하기 ‘좋은 그림’에 그치고 말 것이다. 사고가 난 후 요란을 떨다가 몇 년 후, 아닌 이번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또 화재 사건에 가난한 이들이 희생됐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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