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오른쪽 두번째) 국무총리가 14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 서울청사에서 11년 만에 열린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권욱기자
지난 2007년 중단됐던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가 11년 만에 복원됐다.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여러 변화가 급속도로 진행 됨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혁신의 플랫폼’을 구축,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목표에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각 부처에 산재한 연구개발을 연계해 상승효과를 내는 일이 절박하다”며 “각 부처가 함께, 그리고 스스로 혁신해야 한다”고 말했다. 쓴소리도 있었다. 이 총리는 “내년 예산안에는 국내 역사상 처음으로 R&D예산이 20조 원 넘게 편성됐다”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에서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성과를 내고 있지는 못하다”며 계획과 집행 전반에 대한 점검과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지난 2008년 10조원을 넘어선 국가 R&D예산은 내년도에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할 정도로 급증했지만 산업계나 국민이 체감할 만큼의 성과가 나왔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돼왔다.
이 총리가 이날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를 연 것은 정부의 각 부처들이 협업해 혁신적 연구개발(R&D)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이번 과기장관회의에서 과학기술 기반의 국정운영을 비전(vision)으로 삼고 5대 목표를 설정해 그 실행을 구체화 했다. 5대 목표는 △국가기술혁신체계 고도화 △혁신주도 경제성장 △국민 삶의 질 향상 △포용적 사회 구현 △글로벌 리더국가 도약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첫 회의에선 국가R&D혁신방안 시행계획과 국가 치매연구개발 중장기 추진전략, 4차 산업혁명 대응 과학기술·ICT인재성장 지원계획 등이 안건으로 상정돼 심의·의결됐다.
이중 실생활과 밀접도가 높은 치매연구개발 중장기 추진전략은 치매환자 발병속도를 50% 낮춰 2040년 196만명으로 예상되는 치매환자수를 34만명 줄인 162만명선으로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실현시 국가차원의 연간치매관리비용이 2040년에는 연간 10조8,000억원 절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그 실현을 위해 우선 9년간 총 -5,826억원의 R&D예산 투입 등을 통해 치료제 및 치료기법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혁신적 치매치료기술 개발에 성공하면 치매 관련 국산 약품 및 의료기기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현행 1%대에서 2030년 5%대로 높일 수 있다고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전국의 주요권역별 치매 관련 연구개발을 지원할 메디컬센터를 세우고 관련 신기술에 대한 신속한 당국의 인허가가 이뤄지도록 규제가이드라인을 만들기로 했다.
또 다른 안건인 국가R&D혁신실행방안은 연구자가 난이도가 높고 혁신적인 프로젝트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연구지원을 강화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기술분야의 경우 신규예산중 고위험 및 도전연구에 대한 투자비중을 올해 11.6%에서 2022년 35%까지 높이겠다는 방안이 포함됐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연구자들 사이에선 성과도출에 실패하면 받게 될 인사상, 예산상 불이익을 우려해 난이도가 낮거나 중간 정도인 연구과제를 제출해 예산을 타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이런 어중간한 연구로는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룰 수 없어 앞으로는 보다 난이도가 높은 고위험의 도전적 연구를 장려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R&D관리체계도 한층 전문화, 효율화하기로 했다.
기업의 혁신역량을 높이기 위해 R&D지원이 강화된다. 우선 중소기업 전용 R&D규모가 2022년까지 현재보다 2배 늘어나고, 중소기업 R&D바우처제도가 확대된다. R&D인력을 채용해 장기재직시키는 기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될 예정이다. 정부는 R&D 성과가 지역의 균형발전으로 이뤄지도록 ‘지역수요 맞춤형 R&D사업’ 지원대상 지자체를 올해 5개에서 내년 6개, 2020년 8개로 늘리기로 했다. 이밖에도 과학기술로 양질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과학기술특성화대의 석사 및 박사를 대상으로 ‘학생맞춤형 장려금 포트폴리오’제도를 내년부터 도입하고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해 학생연구원 근로계약제 적용을 확대하기로 했다.
과기정통부 등 관계부처는 이번 회의에서 2022년까지 9만명 가량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내용도 보고했다. 다만 이번 회의에서 의결된 방안들에 대해선 편성된 예산에 비해 목표 및 기대효과가 다소 낙관적으로 설정됐다거나 실효성이 불분명하다는 논란을 살 수 있는 내용들도 일부 담겨 있어 향후 실행과정에서 보다 정교한 보완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민병권·정영현기자 newsroo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