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빈약했다. 증시 침체와 회계감리 때문에 상장이 줄줄이 밀렸다. 아예 상장 계획을 철회한 곳도 적지 않다. 특히 SK루브리컨츠·카카오게임즈·CJ CGV 베트남 등 대어급 IPO가 취소됐고 현대오일뱅크도 연내 상장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상장에 성공한 새내기주의 수익률도 증시 침체로 천차만별이다. 다만 4·4분기 코스닥 신규 상장이 몰리면서 IPO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우량기업이 낮은 공모가에서 출발할 경우 오히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는 조언이다.
8일 기준 한국거래소와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기업은 각각 5곳, 44곳(스팩 제외)이다. 지난해는 8개사, 74개사가 코스피·코스닥에 입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소 아쉬운 숫자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금융당국은 올해 코스닥 신규 상장이 100건을 넘길 것으로 전망했으나 현재 상황으로 봐선 쉽지 않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코스닥 상장사가 100곳을 넘길 경우 지난 2015년(102곳) 이후 두 번째로 100곳을 넘기는 셈이다.
굵직한 기업들이 상장을 철회하는 등 부침도 많았다. 상반기에는 올해 가장 기대를 모았던 SK루브리컨츠가 유가증권시장 상장 절차를 취소했다. 하반기 들어서는 카카오게임즈가 회계감리 지연 때문에 코스닥 상장을 포기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8월 상장 예비심사를 통과했지만 역시 회계 감리가 지연되면서 연내 상장이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6일에는 CJ CGV 베트남마저 수요예측에서 예상보다 낮은 공모가가 확정되자 공모 계획을 철회했다.
이 같은 대어급 IPO가 줄줄이 취소된 탓에 올 들어 공모금액이 3,000억원을 넘긴 신규 상장사는 한 곳도 없다. 이밖에 올해 내내 이어진 증시 침체와 10월 주가 급락 등으로 인해 제대로 기업가치를 평가받지 못할 것이란 판단에 상장 계획을 취소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HDC아이서비스, 프라코, 오알켐, 트윔, 그린페이퍼머티리얼홀딩스 등도 IPO를 취소했다.
다만 12월은 IPO가 몰리는 달인 만큼 막판 스퍼트가 살아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한국거래소에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은 5곳,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은 기업은 18곳에 달한다. 지난 7, 8월 상장예비심사를 청구한 기업들의 심사 결과가 이제 한꺼번에 나오는 모습이다. 이달에도 디자인, 디케이앤디, 아시아나IDT 등 총 20여개 기업이 수요예측을 실시했거나 앞두고 있는 등 IPO 일정이 집중돼 있다.
이 때문에 올해의 마지막 2개월 동안 IPO 절차를 끝내고 증시에 입성하는 기업들의 수도 적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전통적인 IPO 성수기가 연말인 데다 내년 증시도 상황이 크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 계획대로 상장에 나서는 기업들이 많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막판 쏠림 현상은 투자자들에게 해가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다. 최종경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짧은 기간 내에 수요예측 일정이 몰리면 자원의 분산효과 때문에 수요예측 결과가 약세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며 “공모가가 공모희망가 아래로 확정되는 경우가 속출하며 공모 철회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이로 인해 낮은 공모가에 상장한 우량기업은 투자 기회가 되기도 한다. 최 연구원은 “공모가가 낮게 확정된 우량기업이라면 해가 바뀌며 높은 수익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 같은 변수를 적극 활용하는 것도 좋은 투자전략”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증시 변동성이 심했던 탓에 공모주의 수익률은 양극화를 나타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공모가 대비 가장 많이 오른 종목은 지난 6월 상장한 현대사료(016790)로 상승률이 192%(7일 기준)에 달했지만, 7월 상장한 SV인베스트먼트(289080)는 50%나 하락하며 최악의 성적표를 기록 중이다. 올해 상장한 49개 종목 가운데 주가가 공모가 대비 오른 종목은 24개, 평균 상승률은 54%였다. 대유(290380)와 노바텍(285490), 대보마그네틱(290670)과 카페24(042000)도 100% 안팎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대로 내린 종목은 25개, 평균 하락률은 -26%를 나타냈다. 유가증권시장 새내기주 중에선 애경산업(018250)(64%)이 가장 높은 수익률을, 티웨이항공(091810)(-37%)이 가장 낮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해 상장한 전체 종목의 공모가 대비 평균 수익률은 13%다. 하지만 종목별 수익률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공모주 펀드 수익률은 신통찮은 것으로 집계됐다. 공모주 펀드의 올해 수익률은 0.86%에 그친다. 5년 수익률도 15%까지 낮아졌다. 다만 올해 2,835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되는 등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아직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주희기자 ging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