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합의안 반대" 英장관 줄사퇴...커지는 내홍에 메이 입지도 흔들

내각 "초안 지지" 가닥 잡았지만
브렉시트 장관 등 장·차관 4명 사임
반발 거센 의회 비준까지 가시밭길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14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특별 내각회의를 마친 후 런던 총리관저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런던=AP연합뉴스

영국 내각이 마라톤 회의 끝에 유럽연합(EU) 측과 합의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Brexit) 협상 합의문 초안을 지지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일부 각료가 이에 반발해 즉각 사의를 표명하는 등 내홍이 커지면서 합의를 이끈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물론 어렵사리 도출된 합의안도 위기에 처하게 됐다.

메이 내각에서 가장 먼저 메이 총리에게 반기를 든 이는 브렉시트를 주도하는 주무장관이다. 15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도미니크 랍 브렉시트부 장관은 이날 오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오늘 브렉시트 장관직에서 사퇴했다”며 “EU와 합의한 브렉시트 협상 초안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로써 영국은 불과 4개월 사이 두 명의 브렉시트 장관이 사임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데이비드 데이비스 전 장관은 지난 7월 초 메이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 전략인 ‘체커스 계획’에 반발해 사퇴한 바 있다.

이후 한 시간도 안 돼 에스터 맥비 노동·연금장관도 사임했다. 그는 사임을 발표하면서 “합의안이 브렉시트를 결정한 국민투표 결과를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BBC는 두 장관의 사임 소식을 전하며 “웨스트민스터 격동의 날, 그 시작이 될 듯하다”고 평가했다. 두 장관에 이어 수엘라 브레이버먼 브렉시트부 정무차관, 쉐일시 바라 북아일랜드 담당 차관 등도 사임 의사를 밝혔다.


메이 총리는 13일 EU와 500페이지에 이르는 브렉시트 초안에 합의하고 14일 특별각료회의에서 합의 초안에 대한 내각의 지지를 얻어냈다. 메이 총리는 “내각의 공동결정(collective decision)은 정부가 EU 탈퇴협정 초안과 미래관계에 관한 정치적 선언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내각이 협상 초안을 지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영국과의 브렉시트 협상을 이끌어온 미셸 바르니에 EU 측 수석대표도 브뤼셀에서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양측 간에 협상을 타결할 수 있는 결정적인 진전이 이뤄졌다”며 메이 총리에게 힘을 실어줬다. 도날트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5일 기자회견에서 협상 합의문 서명을 위한 특별정상회의를 오는 25일 개최하겠다고 일정을 확정했다. EU는 정상회의에서 정식 서명이 이뤄지면 12월 초 EU 의회 비준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지만 앞서 메이 총리 주재로 5시간 동안 진행된 영국 각료회의에 참석한 각료 중 29명만 찬성하고 11명의 하드 브렉시트 각료들은 반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합의안에 반대하는 장관들의 줄사퇴가 예상됐다. 앞서 일간 가디언은 메이 총리가 합의안 내각 통과를 발표하면서 ‘만장일치(unanimously)’ 대신 ‘공동결정’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각료들 간에 이견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최종 타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고 평가한 바 있다.

우려대로 장관들의 사퇴가 현실화한 가운데 영국 정치권에서는 총리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메이의 보수당은 하원의원 44명이 연서하면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진행할 수 있다. 현재 보수당 하원은 322명으로 161석이 불신임 투표 과반선이다. 게다가 집권 보수당의 연정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북아일랜드 정당인 통합민주당이 크게 반발하는 점도 메이 총리에게 큰 부담이다. 야당인 노동당이 반대하는 합의안의 의회 통과 여부 역시 불투명하다. 영국 의회의 비준이 불발되면 ‘이혼’ 조건을 정하지 못한 ‘노딜 브렉시트’가 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최악의 상황만은 피하자는 여론도 있어 메이 총리가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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