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창 생리대’에서부터 ‘라돈 생리대’까지 여성용품에 대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요즘이다. 14일 서울 강남구 개포디지털혁신파크에서 만난 안지혜(32·사진) 이지앤모어 대표는 저렴하면서도 안전한 여성용품을 찾는 길은 “생리의 원래 명칭인 ‘월경’으로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흔히들 생리라고 부르지만 이는 생리현상의 줄임말일 뿐”이라면서 “심지어는 ‘그날이다’ ‘마법에 걸렸다’는 표현으로 감추려고만 하는데 이는 월경과 관련된 여러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힘들게 만든다”고 말했다.
안지혜 이지앤모어 대표/사진제공=이지앤모어
이지앤모어는 저소득층 여자아이들에게 생리대·월경컵 등 여성용품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일반 고객들이 생리대 하나를 구입하면 300포인트가 자동으로 적립되며 이 적립금으로 아이들이 필요한 여성용품을 구매한다. 이지앤모어가 운영하는 여성용품 전용 쇼핑몰에서도 ‘월경’이라는 표현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생리대·탐폰·월경컵·월경팬티 등 자체 안전성 검사를 통과한 다양한 여성용품을 선보인다.
안 대표가 이지앤모어를 창업하게 된 것은 어느 날 “생리대가 너무 비싼 것 아니냐”는 남편의 한 마디가 결정적이었다. 그는 “여성들의 생필품인 생리대의 가격이 비싸다는 것을 문제로 느끼고 실제로 소비자 물가 대비 매년 2~3배씩 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한 사회적 기업으로 옮겨 근무하던 그가 퇴사와 창업을 동시에 결심하게 된 계기다.
지난 2016년 안 대표는 생리대 살 돈이 없어 휴지와 수건을 대신 사용했다는 후배의 말을 듣고 사회적 기업을 창업 모델로 삼았다. 그는 “당시 정부의 체계적 지원이 없었고 기업도 단발성으로 보여주기식 기부를 할 뿐이었기 때문에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기부할 수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마침 크라우드 펀딩을 시작한 지 5일 뒤에 ‘깔창 생리대’ 이슈가 터졌다. 생리대의 비싼 가격 탓에 비위생적인 신발 깔창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논란이 되면서 첫 달에만 5,000만원을 달성했다.
이지앤모어가 판매하는 월경컵 ‘페미사이클’. /사진제공=이지앤모어
이지앤모어는 국내 최초로 식약처의 판매 허가를 받은 월경컵 ‘페미사이클’을 수입하기도 했다. 내년 초에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월경컵 ‘블랭크컵’을 선보일 예정이다. 블랭크컵은 기존 월경컵과 달리 손이 닿는 부분이 단단해 손쉽게 착용할 수 있다. 평균 2만5,000원에 달하는 기존 월경컵보다 저렴한 가격에 선보여 접근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안 대표는 “매달 개최한 월경컵 수다회에서 우리나라 여성들이 월경컵에 느끼는 불편함을 듣고 이를 반영한 월경컵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월경컵은 몸 안에서 혈을 받아내기 때문에 착용했다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편안하다”면서 “구입을 망설이는 여성들이 월경컵의 장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볼 수 있도록 부담 없는 가격으로 책정했다”고 덧붙였다.
이지앤모어의 목표는 여성들의 생애주기를 따라간다. 임 대표는 “현재는 월경 단계에서 여성들이 겪는 불편함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임신·출산·완경(폐경) 등을 거치며 여성들이 겪는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주는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