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토종 행동주의 펀드, 경영 참여 본격화될까

사모펀드 '10%룰 폐지' 추진 등
'한국판 엘리엇' 탄생 기반은 조성
표대결서 주주 호응 얻기 쉽잖아
"자본력 갖춘 이후 가능" 분석도


“일종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죠. 문재인 정부의 재벌개혁 기조에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강화, 사모펀드 규제 완화까지 사모펀드(PEF)의 참여를 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다만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 참여가 경영권 방어가 취약한 일부 기업들의 특수 상황에서 발생하는 만큼 단기간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강성부 대표가 이끄는 KCGI가 한진그룹 경영 참여를 선언하면서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활성화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국판 엘리엇’이 탄생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은 마련되고 있다고 평가한다. 금융위원회가 추진하는 사모펀드 개편 방안의 ‘10%룰 폐지’가 대표적이다. 현행법상 사모펀드는 헤지펀드(전문투자형)와 PEF(경영참여형)로 나뉘는데 이 중 경영참여형 PEF는 투자기업의 지분 10% 이상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 만약 경영참여형 PEF가 삼성전자(시가총액 301조원)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지분 10% 이상을 확보해야 해 30조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 PEF는 ‘10%룰’ 때문에 대기업 지배구조 투자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헤지펀드의 경우 소극적인 지분 투자에 머물렀다.

반면 해외 PEF들은 1%가 넘는 지분만으로도 투자기업의 배당 확대를 요구하고 지배구조 개편을 압박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지분 1.4%로 해외 펀드들과 결탁해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주주총회를 무산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10%룰이 폐지되면 국내 PEF들도 엘리엇처럼 소수 지분으로 경영에 적극 참여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책임 이행) 강화 기조도 토종 행동주의 펀드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주주로서 제 목소리를 낸다면 행동주의 펀드가 국민연금과 손잡고 기업 가치 개선에 나설 수 있다.

다만 토종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간에 급속도로 늘어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PEF가 기관의 자금을 조달해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모하게 경영권 간섭에 나서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주총회에서 대주주와 표 대결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자본력을 가지고 지분 매입에 나서야 한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더욱 그렇다. 한진처럼 오너 일가의 ‘갑질’로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면 여타 주주들의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PEF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외 자본이 아닌 국내 PEF도 경영권 분쟁에 나설 제3의 세력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며 “하지만 엘리엇이나 서드포인트처럼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력을 갖춘 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도원·김상훈기자 the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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