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지난 17일 인천시 연수구의 아트센터 인천에서 열린 공연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하고 있다.
한국이 낳은 클래식계 신성(新星)의 연주는 한층 농밀해져 있었다. 청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젊은 거장’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만큼 담대했다. 36분에 이르는 화려하고 격정적인 연주가 끝났을 때 관객은 물론 무대를 지휘한 세계적인 대가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고개 숙여 경의를 표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25·사진)이 17일 오후 인천시 연수구의 아트센터 인천에서 가진 공연은 단풍으로 물든 가을밤에 어울리는 깊은 여운과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인 최초의 ‘쇼팽 국제 콩쿠르’ 우승자인 조성진은 이날 공연에서 이탈리아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다. 피아노 협주곡 3번은 베토벤이 1799년 작곡을 시작했으나 작업 중단과 재개를 반복한 끝에 4년이 흐른 1803년에야 비로소 완성한 곡이다. 피아니스트로서, 작곡가로서 가장 격정적인 시기를 통과하는 와중에 쓴 이 곡은 베토벤이 그토록 흠모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벗어나고자 했던 모차르트 협주곡의 매력을 계승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이 담긴 세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아트센터 인천 개관을 기념해 마련된 이날 공연에서 조성진은 물오른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악장의 감성적인 피아노 독주가 전면에 나서는 부분에서는 마치 티끌 하나 없이 매끄러운 바닥 위를 구르는 구슬처럼 청명한 소리를 들려줬고, 연주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건반으로부터 상반신 전체를 강하게 튕겨내는 몸짓으로 객석의 몰입을 유도했다. 특히 조성진은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연주 스타일은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무대 위에서 여유를 즐기는 법을 터득한 듯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의 조성진이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로잡힌 소년과 비슷했다면 이제는 오케스트라와의 하모니를 먼저 신경 쓸 줄 아는 원숙한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연주가 끝난 뒤에도 관객의 환호성이 잦아들 기미가 안 보이자 조성진은 한 곡만 연주하고 들어가는 ‘협연자’로는 드물게 앙코르곡을 위해 두 차례나 더 건반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객석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김주영 음악 칼럼니스트는 “조성진의 성장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음 사이의 행간을 효과적으로 파악하고 듣는 귀’의 발견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베토벤의 예술 세계를 장식하는 협주곡 3번 연주를 통해서도 조성진은 직관적인 감각을 멋지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조성진과 함께 무대를 꾸민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11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이탈리아의 최고 명문 악단이다. 공연의 지휘봉을 잡은 영국 출신의 안토니오 파파노(59) 역시 세계 클래식계에서 ‘완벽주의자’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거장으로 2005년부터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한국을 처음으로 찾은 파파노는 이날 열정적이면서도 유연한 지휘로 30년이 넘는 나이 차가 무색할 만큼 조성진과의 완벽한 호흡을 보여줬다. 파파노와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이번 공연에서 조성진과 협연한 곡 이외에 장대하고 웅장한 ‘베토벤 교향곡 2번’, 강인하고 힘찬 기세가 돋보이는 ‘베토벤 교향곡 5번’을 객석에 들려줬다. /인천=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아트센터 인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