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만유인력


1684년 8월께 영국 왕립협회 회원으로 케임브리지대에 있던 아이작 뉴턴에게 한 손님이 찾아왔다. 방문자는 그의 몇 안 되는 친구이자 천문학자인 에드먼드 핼리. 뉴턴을 만난 핼리는 ‘태양이 행성을 끌어당기면 어떤 형태가 될까’ 하고 물었다. 뉴턴의 대답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오래전에 계산해봤는데 타원이던데.” 당대 최대의 천문학 난제를 풀 수 있다는 기대에 찬 핼리는 뉴턴이 관련 논문을 쓰도록 집요한 설득과 재정적 지원에 나섰다. 그리고 3년 뒤 학계는 물론 세계까지 놀라게 한 물리학의 바이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프린키피아)’와 만유인력의 법칙이 등장했다.


만유인력의 발견이 순탄하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뉴턴은 1665년 흑사병이 영국에 번지자 연구를 중단하고 고향인 울즈소프에 내려갔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고 모든 물체가 일정한 가속도로 지구를 향해 떨어진다는 영감을 얻은 것은 여기서였다. 하지만 몇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도 이를 증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뉴턴의 전기작가 리처드 웨스트폴은 당시 그가 “압도적인 복잡성에 당황해 망설이고 허둥댔다”고 기록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생각하고 ‘프린키피아’가 출간될 때까지 20년 넘는 세월이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지만 그것은 이론일 뿐 법칙으로 증명되려면 아직도 9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알려진 지 18년 후 핼리는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을 이용해 1682년에 목격된 한 혜성이 76년 뒤 다시 나타날 것으로 예측했다. 핼리가 사망하고 16년이 지난 1758년 핼리의 예상대로 혜성이 다시 등장했다. 무려 50년 전 예언이 현실로 나타났는데 누가 이를 반박할 수 있을까. 혜성의 이름이 ‘핼리’로 명명된 것은 뉴턴의 법칙으로 궤도와 주기를 증명한 천문학자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만유인력이 또 한 번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 2019 대학수학능력시험 1교시 국어영역에서 만유인력과 중국 천문학을 결합한 문제가 출제돼 수험생들이 ‘멘붕’에 빠졌다고 한다. ‘질문 자체를 이해하기 힘들었다’는 지적부터 ‘아예 틀리라고 작정을 한 문제’라는 비난까지 불만도 다양했다. ‘최강의 킬러 문항’이라는 평가까지 나오는 판이다. 뉴턴은 만유인력이 330년 뒤에도 세상을 놀라게 할 줄 알았을까. /송영규 논설위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