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전국에 생겨난 십 수 개의 O리단길은 경리단길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 경리단길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때와 몹시 다르다. 사람들로 가득했던 가게 문 앞은 임대문의가 붙고 주말을 제외한 평일에는 인적이 드물다고 한다.
경리단길에서 40년간 꽂가게를 운영해 왔던 이달 중순경 경리단길과 작별한다. 이태원 똑순이도 턱없이 높아진 임대료 앞에서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이태원에서 18년간 가게를 운영해온 방송인 홍석천씨는 자신의 SNS에 경리단길을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2년 전 방송 때 이곳은 길가에는 음악이 흐르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을 뿐이다. 도대체 경리단길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사람들의 발걸음이 줄어든 이후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가게들이 떠나고 있다. 경리단길이 유명해지기 전에는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가난하지만 재능있는 예술가들, 개성 있는 가게들이 골목으로 모여들었다.
경리단길이 고유의 색깔로 사람들에게 유명해지고 상권이 뜨거워지니까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것을 견디지 못한 가난한 예술가들은 동네를 떠났다. 손님들에게 개성으로 승부하던 가게들도 연이어 문을 닫고 그 자리엔 프랜차이즈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가게들이 들어섰다. 경리단길 전체가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렸고 그 결과 손님들도 경리단길을 찾지 않게 되었다. 그밖에도 녹사평역으로부터 걸어 올라와야 하는 오르막길과 주차 문제 등 잇따른 문제로 경리단길은 신음하고 있다.
2년 전, 그 모습 그대로 경리단길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 있다. 떡집을 운영하는 권옥남씨는 새벽 일찍 구슬땀 흘려 번 돈으로 다섯 가족이 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경리단길의 작은 재래시장 내 떡집에서 일궈낸 수확이다. 경리단길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문병호씨 부부는 힘든 시절을 이겨내고 경리단길에서 든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단골들 한 명 한 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장사한 부부에게 경리단길은 삶의 자취이자 터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다. 걸그룹 ‘스텔라’ 출신의 김가영씨는 두 달 전 경리단길 초입에 있는 카페를 운영하게 됐다. 공방을 운영하는 박정은씨는 사랑하던 반려동물이 무지개다리를 건너자 그 동물을 추억하기 위해 양모펠트 아티스트가 되었다. 이들은 아직까지 경리단길에 남아있는 특유의 정취, 사람 냄새나는 분위기가 좋아서 경리단길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이라고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들은 경리단길의 가능성을 믿고 있다. 그 믿음으로 이 작은 골목길에서 새로운 삶을 그려가고 있다.
경리단길의 상인들과 마을 주민들은 경리단길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뭉치고 있다.
건물이 공실로 남아있으면 손해를 보는 것은 건물주들이다. 그러다 보니 좀처럼 내려갈 것 같지 않던 임대료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부 건물주들은 어려운 상황을 타파하는 데 힘을 보태고자 권리금은 물론이고 임대료를 낮춰주는 데도 적극적이다. 상생이야말로 경리단길이 재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 이들은 믿고 있다.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경리단길의 불을 밝히는 사람들, 그들의 72시간을 담았다.
‘다큐3일’은 18일 오후 10시40분 방영된다.
/김주원 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