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갈길 먼 박물관 디지털사업

조상인 문화레저부 차장


15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전후&동시대 미술 이브닝세일’에서 영국 태생의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81)의 1972년작 ‘예술가의 초상’이 세계 생존작가 그림의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무려 9분에 걸친 전화 경합 끝에 경매사는 “에이티밀리언달러”를 외치며 낙찰봉을 내리쳤다. 수수료를 포함한 판매 가격은 9,030만달러, 한화로 약 1,019억원이었다. 앞서 13일에는 전전(戰前)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1929년 작품 ‘촙 수이’가 조금 더 비싼 8,500만달러에 팔렸다. 수수료를 포함한 판매가는 약 9,188만달러(약 1,038억원)였다. 호크니를 우리 화가에 견주자면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이우환 정도를 거론할 수 있겠지만 그의 경매 최고가는 21억원이니 갈 길이 멀다. 호퍼와 비슷한 시대의 우리 화가인 안중식과 조석진, 이상범과 변관식 등 근대 거장의 작품은 2억원도 넘기지 못했다.


작품값 얘기를 한참 했지만 부러운 것이 ‘가격’만은 아니다. 자국의 문화를 보여주고 자랑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경매회사 크리스티는 지난 한 주를 20세기 미국 미술 경매 시즌으로 삼고 세계를 놀라게 할 출품작의 사전 전시가 한창인 현장을 가상현실(VR)로 공개했다. 3차원(3D)으로 제작된 3층짜리 대저택에 들어서면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이 현관 정면에서 방문객을 맞는다. 웅장한 울림을 전하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비롯해 모빌 창시자로 불리는 알렉산더 콜더의 조각도 실제처럼 설치 모습을 볼 수 있고 앤디 워홀의 ‘마릴린’과 ‘재클린’과 ‘비너스’ 등 다섯 점을 한 벽에 연달아 걸었을 때 어떤 느낌인지도 볼 수 있었다. 그림값보다 더 부러운 것은 열흘 남짓한 경매 프리뷰를 위해 3D와 VR을 동원하는 열정이었다(물론 매출액이 수천억원대에 육박하는 ‘장사’라 그런 영향도 없지는 않겠지만).

반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스마트박물관’을 목표로 박물관 디지털화를 선언한 우리의 국립중앙박물관은 260억원으로 책정했던 2019년도 디지털 사업 추진 예산이 최근 140억원으로 삭감되는 고배를 마셨다. 박물관과 미술관의 디지털화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분야로 꼽힌다. 유물의 디지털 관람이나 이용이 가능해지면 학술 연구자들의 접근도 쉬워져 우리 문화 확산의 단초가 된다. 지구 반대편에서 우리 박물관을 속속들이 살펴본 후 한국 여행을 위한 짐가방을 쌀 수도 있고 말이다. 유물 보존·관리나 관람 여건 개선 못지않은 디지털 사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비싼 작품값도 넘볼 수 있는 ‘문화 강국’의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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