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조성된 스타트업 밸리가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실리콘밸리나 중관춘이 스탠포드 대학이나 칭화대 등 대학을 중심으로 조성된 창업 밸리가 토대가 된 것처럼 국내 주요 대학가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밸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먼저 홍대와 합정, 신촌 등을 아우르는 ‘홍합밸리’가 눈길을 끈다. 홍합밸리는 강남이나 판교 등 기존 밸리와 달리 여행이나 예술, 패션 등 다양한 업종의 스타트업들이 모여 형성된 덕에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 2012년 고경환 에이엔티홀딩스 대표가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본 따 창업가를 위한 커뮤니티로 홍합밸리를 조성한 데 이어 2015년 재단법인화하면서 대학가 창업밸리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홍합밸리 오픈라운지 이용자는 지난 2016년 1만명에서 지난해 1만4,648명으로 늘었으며 올해는 10월말 현재 1만 3,574명을 기록해 지난해 수준을 넘어설 전망이다. 스타트업이 밀집한 탓에 높은 회전율을 보인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지난 2016년 홍합밸리에는 약 60곳의 스타트업이 둥지를 텄지만, 이 가운데 지금도 이곳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기업은 이음 등 10곳 정도에 불과하다. 임병호 홍합밸리 매니저는 “초기 스타트업이 많기 때문에 계속 이곳에 머물기보다는 투자 등을 받아 성장한 뒤 강남 등으로 이전하거나 반대로 실패하면 사업을 접고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특징은 외국인 창업가를 중심으로 한 ‘글로컬(Global+Local)’에 있다. 지역 특성상 대학교나 어학당에 다니거나 게스트하우스 등에 머무는 외국인이 많은 데서 착안한 아이디어다. 지난 2016년 시작된 글로컬은 지난해 국제어학당 외국인들을 상대로 창업 설명 간담회를 진행한 데 이어 국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외국인 창업가와 외국서 활약 중인 한국인 기업가의 강연을 제공하면서 명성을 얻고 있다. 임 매니저는 “외국에서 살거나 여행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게스트하우스나 여행 관련 O2O(온·오프라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하는 업체들이 많다”고 말했다.
아이디어 중심의 홍합밸리와 달리 홍릉벤처밸리는 첨단기술 중심의 벤처 밸리를 추구한다. 홍릉벤처밸리를 주관하는 한국기술벤처재단은 밸리 내 연구소와 대학 등 유관기관 간에 협력을 통해 홍릉연구단지의 연구·개발(R&D) 결과물을 사업화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타트업과 중소벤처기업에 창업·입주공간을 제공하며 교육과 투자유치를 연계하고 네트워킹과 마케팅 등을 돕는 등 ‘비즈니스 인큐베이터(BI)’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홍릉밸리 관계자는 “첨단기술 사업화를 위해 KIST를 대표하는 홍릉단지 내 대학, 연구소의 테크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의 입주 지원은 물론 KIST가 보유한 첨단 R&D 연구장비와 인프라를 활용한 입주기업 지원 등을 통해 첨단 기술창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덕분에 홍릉밸리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홍릉밸리에서 창업했던 크리벨시스템즈는 대한과학에 합병, 세계 최초로 스마트랩 시스템을 개발해 코스닥에 상장했다. 홍릉밸리로부터 기술사업화·마케팅 지원을 받으며 졸업한 테크로스는 부산방직에 인수·합병(M&A)되는 등 기술 스타트업들이 기존 산업 생태계가 진화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관악구는 이 같은 분위기에 합류하고 있다. 지난 7월 취임한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관악구 내에 낙성벤처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공약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 7월 벤처밸리조성팀을 신설했다. 이를 위해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부근에 자리한 보훈회관 건물을 ‘벤처밸리지원센터(가칭)’과 같은 창업지원시설로 바꾸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설계용역을 발주한 상태로, 관악구는 이곳에 액셀러레이터 등을 유치해 스타트업 지원에 앞장설 예정이다. 지난 12일에는 스타트업 전문가와 대학 관계자, 액셀러레이터 등 9명으로 구성된 ‘낙성벤처밸리구성자문단’을 출범했으며, 서울대와의 협업을 통해 낙성벤처밸리를 기술 창업 전진기지로 안착시킨다는 방침이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