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인터뷰②] 송승헌의 이유있는 변신 “배우, 내 길이 맞나 싶었죠”

/사진=더좋은 이엔티

“어릴 때는 연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23년 차 배우 송승헌의 말이다. 조각 같은 외모로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고 내로라하는 작품들을 필모그래피에 올리며 승승장구 했지만 그에게는 남모를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 이제야 연기의 재미와 의미를 알게 된 송승헌의 진솔한 고백이다.

“어릴 때는 연기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었다. 그 상황이 닥쳐서 연기를 하긴 했지만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다. 배우에 대한 어떤 개념이 있지도 않았고 그냥 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데뷔하고 나서 보니 내가 TV에서 보던 사람들과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매일 혼나니까 촬영장에도 가기 싫었다. 캐릭터를 고를 때도 ‘이미지도 안 좋아지는데 굳이 악역을 해야 되나’ 이런 어린애 같은 생각이 있었다. 연기자의 마인드가 아니었다.”

그런 그를 바꾼 건 어느 팬이 준 한 장의 편지였다. ‘송승헌 씨의 연기에 감동 받았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한 번쯤 팬에게 들어봤을 이 흔한 말이 송승헌의 얼굴을 붉어지게 만들었다.

“30대 초 중반에 팬레터를 받았다. 내 연기를 보면서 감동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자신에게 감사하라는 편지 한 통이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나는 일로만 생각하고 했던 연기에 누군가 감동을 받았다는 게 너무 미안했다. 그때부터 자세를 바꿨다. 좀 더 열심히 연기를 하려고 했다. 그 편지를 20대 때 읽었다면 지금 더 훌륭한 배우가 됐을 거다. (웃음)”


/사진=더좋은 이엔티

멜로 전문 배우였던 송승헌이 불륜남부터 악역까지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 것 역시 그 이후부터다. ‘굳이’라는 생각에 쳐다보지도 않았던 역할들을 스스로 선택하면서 배우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될 작품을 만나기도 했다.

“캐릭터 면에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인간중독’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캐릭터도 20대 초반의 송승헌이라면 못 했을 거다. 예전에는 정의롭고 착하고 바른 사람이 아니면 안 하려 했다. ‘인간중독’을 하면서 캐릭터를 보는 눈이 넓어졌다. 그러고 나서 ‘미스 와이프’에서 두 자녀가 있는 공무원도 해보고 ‘대장 김창수’에서는 일본 앞잡이 역할도 했다. ‘인간중독’이 연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나니 자신을 바라보는 대중의 눈도 달라졌다. 이제는 멜로 대본보다 사기꾼 캐릭터 대본이 더 많이 들어온다며 웃어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배우로서 오랜 고민을 극복한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어제도 대본을 보는데 다 사기꾼이더라. (웃음) 예전에는 송승헌 하면 정해진 이미지가 있었다. ‘플레이어’ 때도 작가님이 감독님한테 ‘송승헌 씨가 이걸 하신대?’라고 했다더라. 가벼운 모습의 송승헌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만큼 역할이 한정적이었던 거다. 강하리를 하고 나서 보시는 분들도 나를 조금 더 넓게 봐주시는 것 같다.”

이제는 ‘비주얼 배우’라는 말로는 부족할 듯 하다. 매 작품마다 한계를 깨며 자신의 색깔을 덧칠해가는 송승헌. 그가 앞으로 대중에게 듣고 싶은 말은 뭘까.

“아무래도 비주얼적으로 눈에 띄는 점 때문에 더 빨리 알려질 수 있었고 신인 때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소위 비주얼이 좋다는 배우들은 그걸 이겨낼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 그만큼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30대 초반만 해도 ‘이게 내 길이 맞나’ 싶었지만 지금은 정말 멋지게 나이 들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 예전에 어떤 선배님이 ‘배우들이 작품 하나 하고 텀이 길 때가 있는데 결국 남는 건 작품이다. 너무 재지 마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웬만하면 작품은 시도하려고 한다. 너무 고민하지 않고 재밌는 작품이 나오면 또 해보고 싶다.”

/김다운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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