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500 스타트업' 사이 대표 "韓 스타트업 국내 안주땐 도태…'그랩' 성공방정식 배워야"

창업부터 글로벌 겨냥해야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 가능
액셀러레이터 투자 기준은
구성원들 팀워크가 1순위
핀테크·블록체인·디지털 헬스
스타트업 유망분야로 떠오를 것


‘그랩(동남아시아 승차공유)·크레디트카르마(신용등급 조회 플랫폼)·트윌리오(클라우드 통신 서비스).’

미국의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500스타트업’이 초기 단계에 투자해 키워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들이다. 500스타트업은 초기 스타트업들에 전문적으로 자금과 교육을 지원하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액셀러레이터다.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20여개 국가에 글로벌 펀드를 구성해 스타트업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10년 설립 이래 현재까지 8년간 2,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를 했다.

500스타트업을 탄생시킨 크리스틴 사이 대표는 미국 캘리포니아 팰로앨토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스타트업들을 향해서도 “드림 빅(deram big), 한국에만 머무르지 말고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창업을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사이 대표가 국내 언론과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이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들은 일을 열정적으로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고 싶다는 소망만 내비칠 뿐 한국 시장에만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며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전 세계를 무대로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 대표는 유튜브와 구글의 마케팅매니저를 거쳐 2010년 유명 벤처투자자인 데이브 매클루어와 함께 500스타트업을 창업했다. 500스타트업의 성공과 함께 한국계 여성으로서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가로 자리 잡았다.

500스타트업의 강점 중 하나는 미국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 세계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활발하게 투자한다는 것이다. 사이 대표는 “(창업) 당시 실리콘밸리 바깥에 위치한 스타트업들에 투자한다는 데 회의적인 분위기였지만 500스타트업은 투자범위를 대폭 확장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리콘밸리는 자금과 교육 지원이 집중돼 있지만 그런 자원이 부족한 동남아·중동 등 다른 지역의 재능 있는 창업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밝혔다.


이 같은 원칙은 동남아 공유승차 업계를 이끄는 그랩의 성공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500스타트업은 최근 베트남 시장에 1,400만달러(약 158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스푼(개인 인터넷 라디오 방송)·피플펀드(P2P 금융업체)·82랩스(숙취음료 제조) 등 다양한 스타트업에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500스타트업이 투자 대상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기준은 팀 구성원이다. 사이 대표는 “구성원 간 관계가 어떤지, 어떤 리더십이 형성돼 있는지를 먼저 본다”고 말했다. 뒤이어 구체적인 제품을 판단하고 잠재고객층에 대한 분석까지 진행한다고 밝혔다.

선정된 스타트업들은 4개월간의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스타트업의 성장 마케팅, 펀드 모금, 홍보 방법 등에 대한 교육이 이뤄진다. 사이 대표는 “글로벌 네트워크가 막강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졸업 이후에도 24시간 365일 내내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사이 대표가 주목하고 있는 산업 분야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는 핀테크와 블록체인·디지털헬스 분야를 꼽았다. 사이 대표는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졸업한) 사이렌이라는 스타트업은 테크와 헬스케어를 아우르는 기업”이라며 “스마트패브릭으로 만든 양말을 통해 당뇨병 환자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해준다”고 설명했다.

구매력이 있는 계층의 특성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가령 실리콘밸리 내에서는 최근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에 대한 지원이 사라지는 추세이지만 동남아·중동의 젊은층 사이에서는 이커머스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이 대표는 “500스타트업은 최종 소비자층이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에 집중해서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어떤 산업이든지 굳건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추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이 대표는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스타트업들의 특징은 급속하게 성장하는 비즈니스보다는 안정적인 상태에서 기반을 먼저 갖추는 데 집중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한국계 여성이라는 소수자가 미국에서 성공을 거뒀다는 점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사이 대표는 “내성적인 성격인데 미국에서 자라면서 항상 본인의 의견을 강력하게 밝혀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며 “강하게 주장하는 것만이 리더십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의욕을 고취시켜주는 것도 리더로서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또 “소수의 아시아계 여성이 최고경영자(CEO)로서 일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비슷한 환경에서 일하게 될 많은 여성에게 의욕을 북돋우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팰로앨토=권경원기자 nahere@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