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제] 해병대 장병들의 군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뀐다. 첨단기술과 통신 네트워크 기술이 접목된 방탄헬멧과 방탄조끼, 조준경과 야시경 등 개별 장병들의 전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개인장구류가 보급될 예정이다. 해병대는 지난 20일 경기도 화성 소재 사령부에서 개최한 ‘상륙작전 드론봇 전투체계 발전 세미나’ 행사의 장비 전시를 통해 ‘해병대판 워리어 플랫폼’ 구상과 기본계획을 밝혔다. 해병대는 내년 초 계획을 확정한 뒤 오는 2022년까지 기초요건을 충족할 계획이다.
◇빠르고도 늦은 해병대판 워리어 플랫폼=‘빠르지만 늦었다. 또 늦었지만 빠르다.’ 장병들의 개인군장에 대한 해병대의 관심을 설명하는 데 딱 들어맞는 말이다. 먼저 해병대는 다른 군에 앞서 개인장구류에 관심을 가졌다. 미군과의 연합훈련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미 해병대는 월남전 당시부터 이 분야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진행해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와 운용 노하우를 자랑한다. 문제는 돈. 미군이 쓰는 ‘좋은 장구류’를 도입하고 싶어도 만성적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처지라 신규 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해병수색대 등 특수부대가 이전부터 ‘부대별 사제군장 구입’에 상대적으로나마 관대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대다수 해병대원의 개인장구류 개선은 늘 후순위로 밀렸다. 해병은 물론 일부 육군 장병들은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서 쓰던 ‘X밴드(X반도) 군장’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워리어 플랫폼으로 상징되는 개인장구류의 혁신을 알고도 늦었던 해병대의 상황이 이번에는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워리어 플랫폼을 구상하고 방향을 정하는 데는 육군보다 늦었지만 결실은 훨씬 빠르게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병력이 육군보다 훨씬 적어 국가 지원만 있으면 모든 해병대원에게 보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2년까지 기초여건 마련=해병대의 ‘선진화한 군장’ 이야기는 이전에도 몇 번 나왔다. 신형 헬멧 정식구매에 앞서 일단 장비 특성부터 파악하기 위해 구입한 플라스틱 헬멧으로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적도 있다.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해병대는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해병대판 워리어 플랫폼을 보여줬다. 그러나 해병대 워리어 플랫폼이 일반에게 정식 공개된 것은 지난주 중 세미나가 처음. 해병대는 이날 전시회에서 기본개념과 일정도 제시했다. 우선 전 해병대원에게는 공통적으로 화기와 전투복 등이 지급되고 해병대 보병은 육군의 워리어 플랫폼과 같은 수준의 장비가 지급될 예정이다. 야간투시경과 표적지시기·피아식별기·헤드셋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해병대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수색대와 헌병 등에게 소총용 소염기와 소음기, 특수작전용 대검 등 13개 품목을 추가 보급할 계획이다. 연도별로 보면 내년 중 특수수색대와 헌병특경대(대테러부대), 신속기동부대에 우선 지급된다. 이어 2020년에는 해병 1·2사단의 수색대대와 선봉을 맡은 0개 대대, 2021년에는 각 해병사단의 나머지 00개 대대, 2022년에는 여단급 부대 등에도 보급한다는 일정이 짜였다. 해병대 워리어 플랫폼 계획에서 2022년은 완성 시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2025년까지 새로운 전투장구에 익숙하게 해 개개인의 전투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2026년 이후에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는 구상이다. 새로운 도전은 전장 네트워크 환경을 구축하고 개별 장병들에게 근력증강로봇 등 첨단기술을 접목하는 계획이다. 해병대는 내년 1월까지 이 같은 방안을 확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과 다른 점은=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많다. 해병대와 육군이 보병이라는 공통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적으로도 각종 장구류가 복잡하게 진화해 가격이 오르면서 육군과 해병대가 공동으로 장비를 개발하는 경향이 보다 강해졌다. 각기 자존심을 내세우며 다른 장비를 고집했던 미 해병대와 육군이 미래장비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팀을 꾸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도 육군과 해병대가 차세대 워리어 플랫폼 개발에 적극 협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해병대가 상륙작전 위주의 보병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식별점은 있다. 방탄조끼에 부력을 넣거나 갯벌에서 벗어나기가 상대적으로 용이한 스웨이드 전투화, 각종 장구류의 신속한 부·탈착, 경량화보다는 방호력을 중시하는 방탄헬멧 등에서 차별이 두드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병과 항공기 승무원, 기갑부대원 등 임무와 부대별로 워리어 플랫폼에 변화를 줬던 육군처럼 해병대도 부대별 차등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이 경우 대대별 차등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대별로 특성화 임무에 따라 공정, 산악, 기습상륙용 워리어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런 구상이 구체화하면 같은 연대 안에서도 대대별로 전투복이나 방탄조끼가 달라질 수 있다.
20일 전시회에 나온 워리어 플랫폼 마네킹에게 착용된 새로운 전투복은 위장패턴(도트픽셀)만 유지했을 뿐 디자인과 주머니 부착 형태가 현용 해병대 전투복과 많이 달랐다. 팔꿈치·무릎보호대를 내장과 외부 부착 가운데 선택이 가능하고 상의와 하의에 주머니를 많이 단 것이 특징이다. 해병대 관계자는 “새 전투복은 그동안 제기된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시제품으로 최종안이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팔꿈치보호대 등은 채용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속기동부대 역량 강화=주목할 점은 해병대가 병력의 신속전개와 워리어 플랫폼을 같은 연장선상에서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해병대판 워리어 플랫폼을 우선 지급 받을 부대 가운데 2개 부대가 특수임무를 맡게 된다. 해병대사령부 산하로 특수수색대가 올해 3월 신설됐다. 1개 연대가 맡던 신속기동부대도 올해 2월 1개 연대를 더해 2개 연대 규모로 늘어났다. 국가위기는 물론 해외 국민 구출 또는 재난 시 가장 먼저 출동할 부대들을 늘리며 신형 장비를 우선 보급하고 있다는 얘기다. 8월 국방부 훈령에 ‘재난신속대응부대’로 해병대를 지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동장비도 대폭 늘려=엘리트 병력의 투사뿐 아니라 해병대의 전반적인 기동력과 화력 증강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내년이면 해병대 전체에서 미국제 구형 M 48전차가 도태되고 그 자리를 국산 K1E1전차가 차지한다. 신속기동부대가 위치한 사단의 전차대대는 육군이 사용하다 창정비를 거친 K1A1전차가 2022년까지 보급될 예정이다. K1A1전차는 120㎜ 주포를 장착해 주변국의 어떤 전차도 무력화할 수 있다. 여기에 소형 전술차량이 이미 보급되기 시작했다. 육군이 1개 분대씩 승차보병으로 탑승시키려는 바로 그 차량으로 해병대에서도 기동전력의 한 축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상주행 기능을 장착한 K808차륜형장갑차가 2021년부터 실전 배치되면 해병대 신속기동부대는 수송기를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장거리 투사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상륙작전을 위한 새로운 무기도 추가된다. 교체가 아니라 순증 개념으로 추가될 차기 상륙장갑차에 대한 개념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목표연도는 2029년. 기존의 상륙돌격장갑차보다 빠르면 맷집도 강한 상륙장갑차의 완성 및 실전배치 시기는 워리어 플랫폼의 고도화 시기와 맞물린다. 개별장병들의 전투력 극대화와 장비 기동화, 해병대의 국가전략기동부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