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勞 손들어준 당청...재계 "감옥 담장 걸으란 말인가"

野 "대통령 말이 곧 법인가"

탄력근로제 확대와 관련해 국회에 시간을 더 달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 여야 합의가 휴짓조각이 됐다. 민주노총의 반발에 해고자 노조 가입과 전교조 합법화의 길을 터주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이라는 당근을 꺼낸 것도 모자라 입법부의 합의까지 흔들리며 정부 여당이 노동계에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청이 다시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꼴이다. 보완책 없이 내년부터 주52시간 근무에 나서야 하는 재계는 “감옥 담벼락을 걸으란 말이냐”는 격한 반응을 내놓고 있다.

◇문 대통령 한 마디에 뒤집힌 여야 합의=“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합의한 법안 처리를 위해 3당 실무협의를 재가동하여 정기국회 내에 반드시 처리하도록 노력한다.” 긴 공백 끝에 국회 정상화가 이뤄진 지난 22일 여야는 5일 상설협의체에서 합의했던 내용을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기로 약속했다. 여야 합의에는 탄력근로제 확대 연내 입법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합의는 뒤집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22일 경사노위 출범식에서 “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를 논의하면 대통령도 국회에 시간을 더 달라고 부탁하겠다”며 “민주노총의 빈자리가 아쉽다”고 발언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경사노위가 이를 의제로 논의한다면 장시간 노동 등 부작용을 없애는 장치와 임금을 보전하는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며 사실상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메시지를 낸 다음 날인 23일 홍 원내대표는 “경제계와 노동계가 합의해서 좋은 안을 내겠다고 하면 국회에서 시간을 줘야 한다”며 여야 합의와 배치되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는 “경사노위에서 아직 공식적 요청이 오지 않았는데 요청이 오면 야당과 협의하겠다”면서 “당의 입장은 경제계와 노동계가 합의하겠다고 하면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에 무슨 빚을 졌길래” 반발하는 野=야3당은 문 대통령의 발언에 거세게 반발하며 연내처리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특히 여야 합의의 당사자였던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문 대통령이 어제 여야정 상설협의체에서 어렵게 합의를 이뤄낸 탄력근로제를 뜬금없이 연장·보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도대체 대통령은 민주노총에 어떤 빚을 졌기에 민주노총이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업의 고충을 멀리하는 것인가. 국민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따졌다. 국회 환경노동위 한국당 간사인 임이자 의원도 이날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입법부의 합의를 왜 대통령이 뒤흔드는지 모르겠다. 바람직하지 않다”며 “탄력근로제를 통해 기업 숨통도 터주고 기업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건데, 물론 국회에 부탁을 좀 한다고 했지만 대통령 말씀이 (여당에는) 곧 법이 아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역시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은 여야정 협의체의 합의 사항이다. 정부 여당은 다시 협치를 무너뜨릴 생각인가”라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적용은 이번 국회 회기 내에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병완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도 “입법권은 국회에 있는데 경사노위의 논의를 반드시 기다릴 필요가 없다”며 “정기국회 내에 시한을 정해 처리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정기국회를 넘길 수는 없다. 연내 입법처리가 중요하다”고 했다.

◇ILO 국회 비준 당근까지=민주당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시점을 뒤로 미룬 반면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시기는 성큼 앞당겼다. ILO 협약이 비준되면 해고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도 합법화된다. 법 개정이 수반돼야 하는데도 민주당은 비준 목표를 내년 2월로 못 박았다. 그런 만큼 한국당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한국당 소속 김학용 환경노동위원장은 “해직 교원 가입 문제로 법외노조 판정을 받은 전교조가 다시 합법화되고 해직된 사람도 노조원 자격으로 노사 교섭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며 “그야말로 법 위에 군림하는 노조 세상이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정연·임지훈 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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