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가 23일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에서 인공 신경망 반도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KIST
지난 23일 서울 성북구 화랑로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장 이병권) L3 빌딩. 중국의 ‘반도체 굴기’로 인해 우리 핵심 산업마저도 위기를 맞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이 곳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는 중국과의 격차를 벌리기 위한 기술개발에 한창이었다. 연구원들은 ‘실리콘 이후(Post-Si)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신경망 모사 반도체’, ‘양자컴퓨팅’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중 자체 학습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신경망 모사 반도체는 KIST를 비롯 서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POSTECH), 울산과학기술원(UNIST), 국민대, 미국 어바인 캘리포니아대(UC 어바인) 등 10개 팀이 매달리고 있다.
이날 연구소는 사람이 데이터를 입력할 필요 없이 자체 학습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신경망 모사 반도체 시제품(뉴로모픽칩·Neo²C)을 선보였다. 이 칩은 메모리 반도체 중 SRAM 블록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2021년 이후 상용화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우리 업체들이 부족한 비메모리 반도체로의 시장확대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앞서 신경망 모사 반도체 시제품은 지난해 9월 인텔이 처음 내놨고, 중국도 인공지능과 반도체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급속히 추격하는 양상이다. 우리도 국책연구기관과 대학이 연합해 맞불을 놓고 있다.
뉴로모픽칩.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가 선보인 인공 신경망을 활용한 뉴로모픽 시스템, 노트북 컴퓨터 오른쪽이 컨트롤러, 맨 오른쪽 작은 칩이 뉴로모픽칩, /사진제공=KIST
신경망 모사 반도체는 인간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는 것을 모방한 하드웨어 기반의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다. 뇌의 신경망 모사를 위한 △알고리즘·아키텍처 개발 △회로 개발 △회로·이머징 신경망 체계 개발이라는 세 분야에 걸쳐 2016년부터 6년간 총 120억 원이 투입된다.
뉴로모픽칩은 인간 뇌처럼 ‘뉴런’(신경세포)과 ‘시냅스’(뉴런 간 연결부위)를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했다. 뇌가 뉴런 간 상호작용을 통해 시냅스의 연결 강도를 조절하며 전기 신호를 주고받아 정보를 처리하는 것을 모방했다. 김재욱 KIST 박사는 “이미 널리 이용되는 DNN(Deep Neural Network) 기반의 하드웨어 가속기 칩과 달리 인간 뇌의 동작을 모사한 SNN(Spiking Neural Network)에 바탕을 뒀다”며 “16㎟ 면적에 1,024개의 뉴런과 19만9,680개의 시냅스를 갖춰 온라인으로 실시간·비지도 학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소 측은 이날 뉴로모픽칩이 시냅스의 가중치 변화에 따라 물체(bar), 방향(각도), 선택성을 인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이 3년 내 인공 신경망 반도체 개발 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KIST
김재욱 KIST 박사가 인공 신경망 모사 반도체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KIST
장준연 KIST 차세대반도체연구소장은 “2021년까지 자가 학습이 가능하고 저전력으로도 돌아가는 신경망 모사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게 목표”라며 “상용화되면 메모리반도체를 넘어 ICT(정보통신기술) 분야의 새로운 신성장동력을 창출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아직은 미국 인텔 등에 비해 기술 수준이 절반 정도로 평가되나 아직 상용화한 곳은 아무도 없어 우리에게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뉴로모픽칩은 임의로 신경망 구조와 알고리즘의 프로그램이 가능한 기능전환형 특성이 있다. 칩에 사용한 SRAM 메모리블록의 면적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동작을 최적화했다. 실제 신경망에 근거해 별도의 계산 없이도 입·출력을 확인할 수 있어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반도체에 비해 저전력·고효율로 작동할 수 있다.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심층 학습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데이터 처리와 저장에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 2016년 구글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는 170kW(킬로와트)의 전력을 썼지만 이 9단의 두뇌는 20여W만을 소모했다. 박종길 KIST 박사는 “두뇌는 연산과 기억 등에 에너지를 완벽하게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알파고처럼 소프트웨어 기반 인공지능은 복잡한 응용분야에 적용되면 고도의 반도체 소자(CPU와 GPU·그래픽 처리장치 등)를 구동하느라 전력 낭비가 심하다”고 비교했다.
신경망 모사 반도체를 구현하려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활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은 IBM이 2014년 트루노스(TrueNorth)라는 칩을 내놨으나 자가학습이 안되는 한계가 있고, 인텔이 지난해 개발한 시제품(로이히·Loihi)가 최초의 시각정보 인지학습형 반도체칩으로 꼽힌다. 로이히칩은 60㎟ 면적에 13만 1,072 개의 뉴런과 1억 3,000만 개의 시냅스를 갖춰 ‘랍스터의 뇌’보다 복잡하다. 코어 수는 로이히가 128 개인 데 비해 뉴로모픽칩은 아직 한 개라 우리가 한참 추격하는 모양새다. 곽준영 KIST 박사는 “인텔은 로이히를 대학과 연구기관에 제공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며 “우리도 뉴로모픽칩을 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에 제공해 연구 혁신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앞으로 공모를 통해 반도체는 물론 인공지능과 뇌과학의 융합에 속도를 높여 자가학습이 가능한 독자적인 인공지능 뉴로모픽칩을 개발하기로 했다. 장준연 소장은 “앞으로 코어를 확장하고 기업과 공동연구해 2021년 이후 100만 개 뉴런과 2억 개의 시냅스를 갖는 신경망 모사 반도체를 내놓을 것”이라며 “가정용 로봇과 자율주행차 등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알고리즘도 개발할 계획”이라며 활짝 웃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