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은 뇌 특정 부위에 있는 신경세포가 흥분해 반복적으로 발작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시중에 많은 뇌전증 치료제가 판매되고 있지만 여전히 환자 중 절반 이상은 발작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어 새로운 치료제에 대한 수요가 많다. SK바이오팜은 북미·유럽·아시아·중남미 등의 뇌전증 환자 2,4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임상시험에서 기존 치료제보다 우수한 세노바메이트의 효능과 안전성을 확인했다.
세노바메이트의 판매허가가 나면 낮은 성공 가능성과 오랜 기간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지난 1993년부터 신약 개발을 목표로 ‘글로벌종합제약사’를 향한 투자를 이어온 SK의 꿈이 현실이 된다. 글로벌종합제약사는 연구개발(R&D)부터 임상, 생산, 세계시장에 대한 판매까지 의약품 생산의 모든 과정을 독자적으로 수행하는 제약사를 일컫는다. 최근 국내 제약사의 기술수출 계약과 완제품 공급계약 체결 소식이 크게 늘었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세계 주요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마케팅과 판매까지 담당하는 사례는 아직 없다. 독자적으로 제품을 판매하면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뒤따르지만 그만큼 신약 개발과 판매에 따른 수익을 고스란히 가져갈 수 있으며 유통 과정에서 자본력을 가진 해외 글로벌제약사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자체 개발한 신약을 직접 판매하게 되면 수익 면에서나 시장 영향력에 있어서나 단순 기술수출 계약이나 공급계약을 맺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크다”며 “세계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허가와 판매·마케팅이 가능한 제약사가 등장하면 국내 제약업계의 위상도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가 신약 개발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지난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최태원 현 SK 회장은 지난 2007년 SK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후 신약개발 조직을 아예 지주회사 직속으로 편제해 직접 관리하며 글로벌종합제약사로의 도약을 준비해왔다. 2016년에는 손자회사였던 SK바이오텍(원료의약품 위탁생산)의 위상을 자회사로 끌어올리며 400억원의 유상증자를, 올 3월에는 SK바이오팜(연구개발)에 1,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필요하다면 목돈이 들어가는 대규모 해외투자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6월에는 SK바이오텍을 통해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로부터 아일랜드 더블린에 있는 생산공장을 인수했고 올 7월에는 약 8,000억원에 달하는 미국의 의약품위탁개발생산(CMO) 전문기업 앰팩까지 손에 넣었다. 미국 뉴저지에는 SK바이오팜의 글로벌 임상시험을 담당하고 있는 미국 뉴저지의 임상개발센터를 설립했다. 이를 통해 연구개발과 임상, 마케팅 판매에 이르는 신약 개발의 전 과정을 자체 수행할 수 있게 됐다. SK바이오팜은 국내 최다인 16개 신약 후보 물질의 임상시험 승인(IND)을 FDA로부터 확보한 상태이며,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재즈와 공동 개발한 수면장애 치료제 신약 ‘솔리암페톨’도 개발에 성공해 내년을 목표로 FDA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연이어 신약 개발에 성공하면서 SK가 미래 먹거리로 내건 바이오제약사업의 경쟁력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오는 2020년까지 바이오제약사업 매출을 1조5,000억원으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는 SK는 지난달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진행한 기업설명회에서는 2025년까지 매출 3조5,000억원이라는 더 과감한 청사진을 새로 내놨다. 지난해 SK바이오팜의 매출은 1,057억원, SK바이오텍의 매출은 853억원이었다. /양사록기자 saro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