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수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를 따라다니는 수식어 중 하나는 ‘운용업계의 조용한 개척자’다. 배 대표는 지난 1980년대 운용업계에 입문한 후 2003년께 얼라이언스번스틴(AB)자산운용 대표 시절 국내에 처음으로 해외펀드를 소개했다. 당시는 국내 주식시장도 워낙 활황세여서 해외투자를 주목하는 이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해외를 투자 포트폴리오에 넣지 않고는 성공하는 투자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그는 또 2000년 초반 하이일드펀드 투자 개념을 국내 시장에 접목했다. 당시는 채권투자 중에서도 해외에서 우량기업이 아닌 신용등급이 다소 낮은 BBB+ 이하의 회사채에 투자하는 것이 생소할 무렵이었다. 그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려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율로 채권을 발행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금리 상승기에 유망한 상품으로 점찍었다. 예상은 적중해 하이일드펀드는 금리 인상기 대표상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일부 하이일드펀드의 1년 수익률은 18.72%로 20%에 육박할 정도의 수익을 내기도 했다.
상품 개척자로서의 배 대표는 회사에서 ‘투명인간’을 자처한다. 그는 실제 “직원들이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못 본 것처럼 편안하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다. 회식이나 회사 단체활동을 극도로 자제하는 최고경영자(CEO)로도 유명하다. 회식은 점심에 부서별이 아닌 원하는 직원을 몇 명 랜덤으로 초대해 같이하기도 한다.
실제 그는 회사 내부에서 ‘아이크님’이라고 불린다. 아이크는 그의 영어이름이다. 배 대표는 지난해 1월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로 취임한 이래 편안하고 창의적인 회사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퍼스트네임 부르기’를 시작했다. 직원들에게 그를 ‘대표님’이 아닌 ‘아이크’라고 부르라고 했으나 직급에 익숙한 한국문화에서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고안한 것은 영어이름에 한국식 ‘님’자를 붙이는 일종의 로컬라이제이션이다. 배 대표는 “모습과 격식을 갖추면 부담스러워지고 직원들이 경직되기 때문에 나를 못 본 척 하는 문화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만큼 자유로운 조직을 지향한다.
그가 이 같은 문화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운용업은 ‘사람’이 유일한 자산이라는 믿음에서다. “운용사 자산은 아무것도 없고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과 전화기만 있으면 되는 것이 운용사 업무인데 직원들이 편하게 일해야 좋은 상품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는 “운용업에서 사무실, 권위나 직급 이런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면서 “지식산업에서 사무실이라는 공간도 별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며 다소 극단적인 얘기까지 펼칠 정도였다. 배 대표가 올해 유연근무제를 도입한 이유이기도 하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