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Story] 배인수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저금리 안개 걷히는 단계…투자 시야, 해외로 돌릴 때"

'진짜'만 살아남는 경기침체기 눈앞
테마·유행 좇아 접근땐 시장에 필패
펀더멘털 좋은 종목 고르는 게 정답
16년간 381% 수익률 '고배당 펀드'
기본 충실한 '시간 투자' 결실 맺어
국내 주식시장 전세계서 2% 안돼
中·러·베트남 등 신흥국 노려볼 만
여윳돈 있을 때 3번에 나눠 산다면
'시간의 마법'으로 리스크 분산 가능


“저금리 호황기에는 모든 배가 물에 뜹니다.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침체되면 ‘진짜’ 배만 물에 뜹니다. 지금은 그 옥석이 가려지는 단계입니다.”

베어링자산운용은 ‘배당주펀드’ 1호를 국내에 소개한 운용사로 명실상부한 ‘가치주 명가’다. 최근 주가 하락에 펀드환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베어링자산운용의 배당주펀드에는 오히려 3개월간 217억원이 들어왔다. 여전히 투자자들이 베어링자산운용의 가치 투자를 믿어서다. 베어링자산운용은 외자계 운용사지만 다른 외자계와 달리 한국 주식시장에 자산의 절반 정도를 투자한다. 해외펀드를 소개·판매하는 다른 외자계 운용사와의 결정적인 차이점이기도 하다. 배인수 베어링자산운용 대표는 지금의 재테크 시장이야말로 시계제로인 동시에 옥석 가리기 시즌이라고 정의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코스피지수는 2,600을 넘어서며 3,000을 바라봤지만 ‘검은 10월’에는 2,000마저 깨졌다. 국내 주식형펀드에 올 초 가입했다면 손실률은 -20%에 육박한다. 경기침체 시그널이 본격화되면서 부동산도 자본시장도 재테크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지키는’ 투자로 방향이 옮겨가고 있다는 배 대표를 만나봤다.

주식시장에서 30년간 몸담으며 ‘배당주=베어링자산운용’이라는 공식을 세운 배 대표는 현재 시장을 어떻게 볼지 궁금했다. “최근의 시장은 긴 터널을 지나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IMF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돌이켜보면 기회의 시장이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위기인 줄만 알았죠. 지금은 무엇이 기회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배 대표는 “지금은 저금리의 환상이 걷히는 단계”라며 “저금리의 안개가 사라지고 경기 침체기가 오면 ‘진짜배기’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진검승부의 시장에서 배 대표는 ‘진짜’를 고르는 것은 100% 펀더멘털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의 고수에게 묘안을 기대했지만 생명이 짧을 수밖에 없다는 주식·자본시장에서 몇 십 년 잔뼈가 굵은 배 대표가 말하는 해법은 조금은 시시해보일 만큼 간단했다. ‘고투베이직(기본으로 돌아가라)’.

“인간은 행동이 앞서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테마’ 투자로는 결국 시장에 필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가들이 매달려도 어려운 시장을 감정이 앞서는 사람이 무턱대고 테마·유행에 기대 들어왔다가는 승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가 개인이 시장을 이기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행동경제학’이었다. “사람은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정량으로 같이 100씩 있다고 보면 결과도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같이 100이어야 하지만 나쁜 감정이었을 때 느끼는 패배감이나 불안감이 좋은 감정일 때보다 훨씬 큽니다.” 행동경제학을 주식시장에 접목하면 주식이 손해가 나기 시작하면 사람은 마음이 급해지고 대처할 수 있는 이성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잘하는 투자는 펀더멘털이 좋은 종목을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간단한 원리인데 사람은 손실장에서 흥분하게 되고 마이너스에 더욱 격하게 반응하면서 더 따는 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베어링자산운용이 배당주에 일찍 눈을 뜬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지난 2002년 4월 출시돼 16년이나 된 ‘베어링 고배당펀드’는 국내 최초의 공모 배당주펀드다. 오랜 전통만큼 이제는 펀드시장에서 배당주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실제 운용성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설정 이후 수익률은 381%에 이른다. 최근 주가 하락을 감안하더라도 의미 있는 수치다. 16년간 장기 보유했다면 투자자산이 네 배로 불어난 셈이다. 펀드시장에서 10여 년 사이에 네 배로 불어난 자산은 의외로 찾기 어렵다. 최근 주가 하락기에도 베어링 고배당펀드는 다른 펀드보다 환매가 많지 않다. 판매사들도 투자자들도 “베어링 고배당이니까”라며 침착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요즘에야 베어링 고배당펀드를 인정하고 있지만 처음 시장에 출시됐을 때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2000년대 초는 벤처 버블로 회사명에 무조건 ‘닷컴’만 붙이면 상한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자고 나면 상한가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는 당시건만 베어링자산운용이 ‘기본으로 돌아가는’ 투자를 내세우며 배당주펀드를 앞세워 ‘스텝바이스텝’ 투자를 강조했을 때 투자자들은 “이 호황에 무슨 기본”이라며 외면했다. 하지만 2004년 닷컴 버블이 붕괴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배당주펀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배 대표는 배당주펀드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에 충실한 동시에 시간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테마가 아닌 시간에 투자해야’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최근의 위기도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이기는 투자를 위해서는 ‘시간’을 사야 하는데 좋은 우량주를 싸게 살 수 있는 시점으로 본다면 최근의 위기도 기회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는 신흥국의 투자 시기가 지금이라고 말한다. 배 대표는 “우리나라에만 투자해도 돈을 벌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면 지금은 우리나라에만 투자해서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며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글로벌 전체로 보면 2%가 되지 않는 작은 시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저성장 문턱에 들어선 만큼 해외투자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다. 배 대표는 2001년 AB자산운용 시절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해외펀드를 들여오기도 했다. 그는 “중국·베트남·러시아 등 이머징시장은 최근처럼 떨어지면 기뻐하면서 사야 한다”면서 “2~3년, 길게는 5년 장기보유할 생각이라면 지금이 이머징시장 투자 적기”라고 말했다. 투자가 남이 안 살 때 사고 다들 올라 너도나도 달려들 때는 이미 꼭지로 성공률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분산투자를 강조한다. 배 대표는 “신흥국에 지금 투자한다고 해도 한꺼번에 넣으면 안 됩니다. 지금 가입할 돈이 있다면 세 번으로 나누세요. 개인투자자들이 보기에 바닥이라고 접근해도 바닥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나누면 비싸게 살 확률이 낮아집니다.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시간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시간의 마법에 기댈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이유로 투자 관행을 지적했다. “80대20, 우리나라는 개발시대부터 지금까지 부동산이 개인의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80을 넘고 나머지 20을 펀드나 연금 등 자본시장에 투자합니다. 그동안 부동산이라는 확실한 안전자산이 있었기 때문에 자본시장에서는 공격적인 투자를 선호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배 대표는 “현재까지 부동산시장은 불패 시장이었지만 이제는 노령화사회에 접어든데다 집에 대한 수요가 예전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확실한 안전자산이 아니다”라며 “그래서 자본시장에서 시간에 대한 투자가 보완책으로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우리나라의 투자 관행은 부동산이 주, 자본시장이 양념·보완재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노후를 위해 주식을 해야 하는 상황도 올 수 있다는 게 배 대표 설명이다. 노후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월급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간의 마법에 기댈 수 있는 잘 고른 펀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베어링자산운용은 다음달 중 하이일드펀드를 내놓을 계획이다. 하이일드펀드는 금리 인상기에 주목받는 펀드로 시장에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베어링자산운용은 글로벌시장에서 340조원을 굴리고 이 중 250조원을 채권에 투자할 만큼 ‘채권에 특화된 운용사’다. 그만큼 하이일드펀드의 경쟁력이 높다는 얘기다. 하이일드펀드는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BBB+ 이하 회사채)에 투자한다. 신용등급이 높지 않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려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율로 채권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통상 금리 상승기에 유망한 상품으로 꼽힌다. 배 대표는 “하이일드채권은 금리 인상기에 매력적인데 미국이 금리를 올릴 여지가 높아 하이일드펀드 투자가 유효할 것”이라며 “배당주의 꾸준함과 하이일드펀드의 시의적절한 투자가 만나면 개인의 투자 포트폴리오로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리기자 boris@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He is...

△1963년 부산 △1982년 서울대 경영학 △1996년 뉴욕 컬럼비아 경영대학원(MBA) △한화증권 경제연구소 금융담당 애널리스트 △1990년 한화증권 뉴욕사무소 대표 △2001년 한화증권 금융마케팅 역외펀드팀 헤드 △2003년 얼라이언스번스틴 한국사무소 대표 △2006년 얼라이언스번스틴자산운용 세일즈 대표 △2013년 베어링자산운용 뮤추얼펀드 비즈니스 총괄전무 △2017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