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문화창고
“성적을 떠나서 일 년에 세 작품을 하기가 힘들잖아요. 열심히 살아온 것 같아서 만족스러워요.”
KBS2 ‘흑기사’부터 SBS ‘흉부외과’, 영화 ‘창궐’까지. 서지혜의 2018년은 누구보다 바빴다. “연기를 안 하면 배우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다작은 욕심이 아닌 배우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흉부외과’는 서지혜의 배우 인생 첫 메디컬 드라마 도전작이었다. 그가 연기한 윤수연은 흉부외과 의사라는 직업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워낙 전문적인 영역의 캐릭터라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서지혜는 끈질기고 똑 부러진 성격으로 훌륭히 작품을 이끌어갔다.
“이번 드라마에서는 진짜 의사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의사 역할이 아니라, 능숙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용어들도 정말 어려워서 적어놓고 다녔다. 내 신이 아니더라도 다른 배우들의 대사에 있는 의학 용어들까지 입에 익숙해질 수 있게 계속 외웠다. 의료용 기계들도 처음에는 순서도 못 외워서 한 신 찍는데 6시간씩 걸리고 했는데 나중에는 선생님들이 따로 자문해주시지 않아도 익숙하게 사용했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싶었다.”
‘흉부외과’가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바로 리얼함이었다. 그럴 듯 해 보이는 메디컬 드라마가 아닌, 실제 병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리얼리티와 완성도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덕분에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노고는 배가 됐지만, ‘가장 리얼한 메디컬 드라마’라는 호평을 들을 수 있었다.
“보통 한국 메디컬 드라마를 볼 때 수술실에서 장갑을 끼고 계속 손을 들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실제 수술장에서는 안 그런다더라. 멸균 상태이기 때문에 다 만질 수 있다. 선생님들이 제발 그렇게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실제 의사 선생님들도 우리 드라마를 보고 가장 리얼한 메디컬 드라마라고 평가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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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논란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극 중 파열된 심장에 본드를 바르는 장면이 등장하면서 시청자들 사이 갑론을박이 펼쳐졌고, 박태수(고수)와 최석한(엄기준)의 가족들과 얽힌 윤수연에 대해서는 ‘민폐 여주’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기에, 서지혜는 이러한 논란들 역시 행복했다고.
“본드 수술 장면은 사전 점검을 하고 선생님들과도 얘기를 나눈 후 촬영한 부분이다. 우리끼리도 이게 ‘이게 방송이 나가면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까’ 싶었다. 이런 사례가 실제로 있지만 시청자 분들은 모를 수밖에 없으니까. 논란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수연이의 그런 설정들도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그리기 위한 설정이었다. 민폐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그런 일들을 계기로 환자를 대하는 수연이의 태도가 변하게 되고 진정성 있는 의사로 성장했다. 이런 논란들도 어쨌든 우리 드라마에 대한 관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속상함이나 섭섭함은 없었다.”
오히려 아쉬운 점은 따로 있었다. ‘흉부외과’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인 ‘멜로 없는 메디컬 드라마’가 서지혜에게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멜로가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 감독님께 ‘진짜 멜로가 없냐’고 재차 물어봤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도 메디컬 드라마를 한다고 했을 때 첫 번째로 물어보는 게 ‘멜로 있어?’였다. 없다고 하니 다들 안도했다. 멜로가 있으면 재미가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2002년 뮤직비디오로 데뷔한 서지혜의 필모그래피에는 공백기가 없다. 조연부터 주연까지 역할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그는 늘 작품 안에 있었다. 10여 년간 쉬지 않고 달려 왔지만 그의 열정은 식을 줄을 모른다.
“다작에 대한 욕심보다는 일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것 같다. 그냥 꾸준함이 답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쉰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배우니까 당연히 연기를 하는 거다. 연기를 안 하면 배우가 아니지 않나. 작품을 끝낼 때마다 항상 얻어가는 게 있다. 나의 장단점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게 되고 연기적으로 고치지 못한 부분을 다시 상기시키기도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부족한 점을 많이 채우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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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20대를 지나고 나서는 새로움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다. ‘흑기사’부터 ‘창궐’, ‘흉부외과’까지 필모그래피 속 그의 색깔이 더욱 다양해진 이유도 이 때문이다.
“늘 새로운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 20대 때는 연기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도전을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점점 발전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면서 예전에는 못했던 것들에 대해 도전하고 있다. 정말 좋은 캐릭터와 작품이라면 작은 역할이라도 얼마든지 하고 싶다.”
꾸준한 노력의 결과일까, 최근 서지혜는 매 작품마다 ‘인생 캐릭터 경신’이라는 호평을 듣고 있다. 이제는 작품 속 화려하고 예쁜 그의 얼굴보다 다채로운 변신으로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보여줄 그의 연기가 더욱 기대된다.
“인생 캐릭터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두고 연기하지는 않는다. 매번 좋은 캐릭터와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임한 게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 ‘흑기사’때도 그렇고 다들 인생 캐릭터라는 얘기를 해주시는데 그러면 다음 작품을 할 때 더 부담될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안 하려고 한다. 아직 연기 할 날이 너무 많다. 매 작품마다 인생 캐릭터를 만나고 싶다.”
/김다운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