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지하인프라...지중맵이 없다] 얽히고설킨 산단 지하배관, 노후화에 매설자료 없어 '재난 무방비'

■산업단지도 '사각지대'
울산산단 최근 5년새 6건 배관사고
양산단층 가까워 지진땐 더 큰피해
배관망 통합관리 사업 진행도 더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지난 9월 13일 울산 남구 명동사거리에서 발생한 스팀이송 지하배관 폭발사고 현장에서 원인 파악을 위해 사고 부위를 절단하고 있다. /서울경제DB

230여개의 화학업체가 밀집한 울산지역 산업공단 지하에는 1,653㎞에 이르는 각종 배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화학관 722㎞, 가스관 565㎞, 송유관 155㎞, 스팀관 58㎞, 상하수도와 전기·통신 등 기타 배관이 152㎞다. 이 중 70%가량이 매설한 지 15년이 지났으며 30년 이상 된 노후관도 74㎞에 달한다.

사고도 매년 반복된다. 27일 울산시에 따르면 최근 5년 새 6건의 배관 사고가 발생했다. 지난 2014년 1월 남구 용연사거리에 설치된 프로판 가스 배관이 다른 업체의 지하배관 매설 굴착공사 중 파손돼 프로판 가스 40톤이 누출됐다. 한 달 뒤에는 울주군 온산공단 도로에 묻힌 자일렌 배관이 역시 굴착 작업 중 파손돼 3만ℓ의 자일렌이 유출돼 토양이 오염되기도 했다. 2015년에는 한전이 지질조사 굴착작업 중 매설된 수소 배관을 건드려 인근 공장으로 수소 공급이 중단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질소가스 6만㎥가 누출됐으며 이듬해는 배관 노후화로 산화프로필렌이 누출돼 악취가 진동하기도 했다. 9월13일 발생한 스팀 배관 폭발 사고는 아직도 원인 파악조차 되지 않고 있다. 이 사고로 도로에 있던 덤프트럭 한 대가 파손되고 도로가 3m가량 패이거나 내려앉았다. 다행히 사고가 자정 가까운 시간에 발생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사고는 대부분 굴착 공사 중 기존에 묻혀 있는 배관을 건드렸거나 설비가 노후화한 탓에 발생하고 있다. 석유화학 업체가 필요에 따라 그때그때 지하에 매설하면서 어디에 어떤 배관이 묻혀 있는지 정확한 자료도 없었다. 특히 울산 공단은 포항과 경주에서 울산·양산·부산으로 이어지는 양산단층과 가깝다. 최근 양산단층에서 연이어 지진이 발생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뒤늦게 배관 현황을 파악하기 시작해 3월에서야 겨우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했다.

매년 반복되는 사고에도 이를 예방할 움직임은 올해 겨우 시작됐다. 울산시는 각종 배관사고를 예방하고 신속하게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290억원을 들여 내년까지 지하매설 배관 통합관리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울산지역본부도 지난달 4일 ‘울산석유화학단지 지하배관 안전진단 연구용역’ 착수보고회를 가졌다. 국비 등 총 40억원을 투입해 향후 5년간 울산 및 온산국가산업단지의 노후배관 상태를 진단해 울산에 특화된 배관 안전관리대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이동구 울산 석유화학산업 발전로드맵(RUPI) 사업단장은 “2010년 12월 사고 예방을 위해 공동 배관망 사업을 제안했지만 재원 문제와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 등으로 계속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그동안 사고가 반복됐다”고 지적했다.

사고를 막을 근본적인 대책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한 상태다. 지하에 묻혀 상태가 어떤지 모르는 배관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공동 관리하는 통합 파이프랙과 지하 배관을 일원화하는 지하공동구를 구축하는 공동 배관망 사업은 올해 겨우 국회에 14억원의 설계비가 올라간 상태다. 이 사업단장은 “국민의 생명과 바로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더는 미루지 말고 최우선 과제로 다뤄야 한다”며 “안전진단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공동 배관망을 서둘러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울산=장지승기자 jj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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