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산 ‘테이프 no.3’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
가나아트 한남점에서 열리고 있는 조각가 허산의 전시 전경. /조상인기자
작업하다 만 청테이프가 흰 벽 가운데 떡하니 붙어있다. 다른 쪽 구석에는 주황색 테이프도 달려 있다. 가나아트 한남점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어수선한 공간 분위기에 ‘전시 철수 중’인가 착각할 정도다. 바닥에는 구겨진 종이컵 3개가 뒹군다. 휴지통에 넣으려 집어 들었더니 묵직하다. 청동조각이다. 다시 보니 테이프도 정교하게 작업한 청동 작품이다. 벽에 박힌 나사못 하나까지도 작품이니, 이로 인해 벽과 공간 전체가 예술적 작품이 된다.
영국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작가 허산(38)의 신작들이다. 그의 대표작은 ‘부서진 기둥’인데, 전시장 한가운데 기둥 귀퉁이가 깨져 콘크리트 속살을 드러낸 채 안쪽으로 고려청자를 내보이고 있다. “대학 졸업 즈음해 찾아갔던 한 갤러리에 ‘공사현장’이 있었고 작품인 줄 알고 박수를 쳤죠. 그런데 일하는 분이 나오시며 비키라는 거예요. 예술과 일상이 헛갈렸던, 공사가 진행 중인 그 상황을 건축공간을 이용한 작업으로 연결한 게 시작이었죠.”
서울대 졸업 후 영국의 미술 명문 슬레이드예술학교로 유학 간 허산은 데미안 허스트의 고향이기도 한 글로스터셔의 한 대학 공모전에 출품했다. 지붕이 돌출된 현관부에 ‘기둥’을 설치했다. 전시 개막 다음날 “기둥이 부러졌다”는 신고전화가 쇄도했고 급기야 관리실에서는 사고를 우려해 접근금지 테이프를 작품 주변에 둘러쳤다. 관객들이 그 정도로 작품에 몰입한 것이니, 작가는 흡족했다. 부서진 기둥이나 깨진 벽 사이로 도자기가 보이는 작품은 무심코 판 땅에서 그릇 파편들을 찾아내곤 했던 경주에서의 어린 시절이 투영됐다. 갤러리 내부보다 그 바깥 공간에 관심 많은 작가는 “예술 밖 일상에서 예술을 경험하고 실제 생활을 예술로 바꾸고 싶은” 꿈을 꾼다. 2013년 영국 왕립 조각가 협회에서 신진작가상을 받았고, 파랑·초록·주황색 종이컵을 쌓아올린 그의 청동 조각은 영국 정부예술컬렉션(GAC)으로 소장됐다. 전시는 12월2일까지 열린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허산 ‘세 개의 컵’ /사진제공=가나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