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제구의 ‘리더십 레슨’] 안전한 조직의 리더가 가지는 딜레마

<이 콘텐츠는 FORTUNE KOREA 2018년 11월호에 실린 칼럼입니다.>

▶안전한 조직에 의존했던 리더가 준비 없이 조직을 떠난 후에 안전하지 못한 상황을 직면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현재 몸 담고 있는 조직이 안전하다고 본인의 미래도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 신제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사진=셔터스톡

리더가 조직을 떠나는 순간 조직의 생존과 자신의 생존은 별개가 된다. 안전한 조직 바깥에서의 리더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조직에 헌신했던 리더가 조직을 떠난 후 좌절하지 않고 의미 있는 미래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절박한 심정으로 ‘안전한 조직이 불안전한 리더를 만드는 4가지 위험한 가정과 역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위험한 가정 1. ‘월급이 한 번도 밀려본 적 없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것이 바로 매달 꼬박 꼬박 월급이 통장에 입금되는 것이다. 월급이 별 걱정 없이 제때 들어오면 예정하고 있는 모든 것을 계획대로 별탈 없이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 세월 월급에 의존하다 보면 규칙적인 수입 단절 후에 닥쳐오는 공포를 예상하지 못한다. 퇴직 이후에도 지출은 큰 변화가 없는데 수입만 불규칙적으로 변하다 보니 생각보다 힘이 든다. 월급의 금단현상이 급격한 불안감 상승을 가져오고, 그 결과 미처 준비하지 못한 현실에 난감해질 수 있다.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힘겨움이다.

따라서 금융 관련 상품이나 자금 플랜에 대한 지식과 정보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없어 금융 관련 정보와 지식에 관심이 없을 수 있겠지만, 퇴직 후 수입원을 마련할 방법은 금융 외에도 있으니 보다 적극적이고 꼼꼼한 준비를 해야 한다. 돈이 없으면 지속적으로 작은 돈이나마 벌 수 있는 역량을 점검해 대비해야 한다.

#위험한 가정 2. ‘지난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온 전문가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조직의 이유와 논리로 결정된 업무를 오랫동안 수행해 왔고 잘했기에 보람도 크다. 조직에 기여할 만한 성과도 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조직에 있을 때 한 분야에 지나치게 집중하다 보면 그 일만 하려하거나 그 일만 잘할 수 있다. 하던 일을 반복하면 단련이 되고 단련이 반복되면 숙련이 된다. 숙련이 반복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길들여지기 쉽다. 자칫하면 그 일 외에는 해본 일이 별로 없거나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많지 않을 수 있다.

쉽게 말해 하나만 아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란 얘기다. 힘겹다고 호소하면서도 익숙해진 일이 어느새 편안해진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오랜 세월 숙련된 지식과 기술로 제2의 인생을 준비한 분도 있겠지만, 이들 간에 상관관계가 높지 않은 경우도 많다.

안전한 조직에 있던 리더가 이직을 했을 땐 하던 일 외에는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이동해간 조직의 구성원들로부터 능력에 의심을 받거나, 이력서는 화려하지만 역량은 미달이라는 불명예를 얻어 곤경에 처하는 일이 발생하곤 한다.


익숙한 일이 익숙하지 않은 일에 대한 알레르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고민이 필요하다. 과연 내가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과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다고 의심 한번 해보지 않은 일 중에서 실제로 혼자 해보라고 하면 하지 못할 일은 없는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본인이 거쳐온 부서와 거기서 했던 일을 단순히 나열하는 허세보단 실제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그 일을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면밀히 점검하고 겸손하게 준비해야 한다. 지금 당장 말이다.

#위험한 가정 3. ‘수많은 부하직원들이 함께 했었다.’ 다수의 유능한 부하 직원을 거느린 리더에게 그 무엇이 부러우랴? 조직은 홀로 존재할 수 없고 혼자 생존할 수도 없다. 반드시 누군가 곁에서 함께 해야 할 일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직급이 높아지고 소위 부하직원들이 늘어나면 리더가 직접 해야 할 일의 질은 높아지는 반면 양은 줄어든다. 이런 일이 익숙해지면 퇴직 후 리더가 홀로서기를 하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혼자 해본 일이 많지 않은 탓에 혼자 하는 모든 일들이 불편하고 마음 아프다.

따라서 리더 스스로 많은 일을 직접 하는 걸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부하 직원들의 일에 참견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리더 본인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본인을 위해 적극적으로 배우면서 일에 대한 감각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아무도 리더 본인을 대신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못하면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

이직을 해도 마찬가지다. 이직한 조직에서선 이동해 온 리더를 끊임없이 따져보고 실험을 할 것이며 판단할 것이다. 이 과정을 외롭게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는 방법은 단 한가지다. 실력이다. 내공을 쌓는 일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위험한 가정 4. ‘평생을 갑으로 살았다.’ 매우 위험한 가정이다. 조직에 있으면 조직이 내 것 같을 때가 있다. 특히 을을 만나면 갑의 자신감은 배가 된다. 그래서 을의 마음을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몸 담고 있는 이 조직이 영원히 내 것은 아니다. 떠나면 내 것은 없다. 잊히면 그만인 것이 조직이다. 갑의 지위도 사라진다. 퇴직하면 을로 사는 삶에 익숙해져야 한다. 누구도 도와줄 수 없고 알아주지도 않는 을의 지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을의 삶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불쾌하다. 그동안 을에게 행했던 갑질에 대한 미안함이 아니라 내 것으로 믿었던 갑의 상실감 자체가 슬프다. 조직에 있을 때 을을 연습해야 한다. 상대를 더 배려하고 고려하는 마음, 양보하고 돕는 자세, 반성할 줄 알고 사과할 줄 아는 행동을 연습해야 한다. 연습해야 덜 힘들다. 퇴직 후 많은 분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존재감의 상실이다.

이처럼 조직을 떠나면 많은 것들과 이별을 해야 한다. 고마웠던 월급, 행복했던 일, 사랑했던 후배들, 그리고 반가웠던 고객과 이별해야 한다. 이별은 늘 아쉬움과 후회를 안겨준다. 있을 때 몰랐던 의미와 진실도 떠나면 알게 된다.

떠난 후 덜 후회하려면 미리 후회하면 된다. 고마운 월급이 사라질 때를 미리 생각하면 지금의 월급이 쥐꼬리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 무기력해진 자신을 미리 생각하면 소홀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것이다. 늘 곁에 있어 소중한 줄 몰랐던 부하직원들이 다 사라지고 홀로 남는다고 미리 생각하면 반갑지 않은 부하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조직의 힘에 의지했다가 갑을 관계가 바뀌어 비참한 입장이 될 수 있음을 미리 생각하면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생각보다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생을 오래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 중 하나는 다 좋은 것도 없고 다 나쁜 것도 없다는 것이다. 좋은 것은 조금씩 만들어가고 나쁜 것은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지혜이다. 조직에 있을 때 조직을 떠날 때를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면 덜 후회한다는 점에서, 안전한 조직에 계신 많은 직장인들이 미리 미래를 생각해보면 지금을 좀 더 의미 있게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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