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19일 한국GM의 연구개발(R&D)법인 분리를 위한 주주총회가 열릴 예정인 부평공장 사장실로 향하던 산업은행 관계자가 노조원들에게 막혀 되돌아가고 있다. 이날 주총에서 R&D법인 분리 안건이 통과됐다. /연합뉴스
법원이 한국GM이 연구개발(R&D)법인을 분리해 새로운 회사를 만드는 경영정상화 계획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GM 본사와 글로벌 전략 차원에서 추진해온 경영정상화 경로가 흐트러지면서 한국GM은 당혹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적자 폭을 줄이지 못하면 메리 배라 GM 회장이 폐쇄하겠다고 선언한 해외 공장의 목록에 한국GM이 포함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8일 자동차 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민사40부는 KDB산업은행이 한국GM을 상대로 제기한 주주총회 결의 효력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원고 패소를 결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앞서 1심은 “임시주주총회 개최 자체를 금지하지 않으면 산업은행이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급박한 우려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한국GM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2심에서는 산업은행이 ‘분할계획서 승인 건’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가처분 신청의 일부를 인용했다.
앞서 한국GM은 지난 10월19일 2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노동조합이 반대하는 가운데 주주총회를 열고 R&D법인을 분리해 오는 12월1일 신설법인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를 설립하는 계획을 확정했다. 명분은 파업 등 노조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체적인 의사결정과 일정으로 연구개발(R&D) 업무를 효율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GM이 내놓을 차세대 글로벌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개발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별도 조직을 만들어 적시에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 목표다. 법인이 설립되면 1만여명의 한국GM 직원 중 R&D 인력 3,000여명이 새 회사로 옮기게 된다. 당초 사측은 30일 법인을 분할하고 다음달 3일 분할 등기를 완료해 모든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당시 “의도가 분명치 않다”며 산업은행은 법인 분리와 관련된 설명을 듣기 위해 주총장에 참여했지만 노조의 방해로 참석하지는 못했다. 결국 한국GM은 17%의 지분을 가진 2대 주주 산은이 빠진 상태에서 법인 분리 및 신설법인 안건을 결의했다. 하지만 재판부가 85% 이상 의결권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처리된 안건에 대해 효력을 정지하는 판결을 내리면서 법인 분리를 이틀 앞두고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한국GM은 이에 대해 “3심의 판단까지 받겠다”며 법인 분리를 관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미 미국GM도 21일 로베르토 렘펠 GM 수석 엔지니어를 대표이사로 임명하는 등 GM테크니컬센터코리아 이사회에 속할 GM 본사 주요 임원 6명의 명단을 발표한 상황이다. 한국GM 관계자는 “법원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며 “법인 분리는 경영정상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GM은 올해 경영정상화 계획을 밝히며 5년간 15개 차종을 국내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국내 시장에 맞춘 차종을 분리될 R&D법인에서 집중적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한국GM은 R&D법인 분리·신설 없이는 경영정상화가 요원하다는 판단이다.
주주총회 결의 효력정지 신청 항고심에서 일부 승소 판결이 내려지자 한국GM 주주인 산은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산은이 법인 분리를 반대한 것은 한국 시장 철수가 아니라 경영계획을 구체적으로 받지 못한 것이 이유였다. 일단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고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속내는 복잡한 실정이다. 법원이 법인 분리 주총 결과에 대해 효력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오히려 판이 커진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이번 사태 이후 여러 경로를 거쳐 “법인 분리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고 절차상 문제가 있다”고 밝혀왔다. GM 측이 산은에 향후 경영계획만 충실히 전달해준다면 법인 분리를 찬성하는 쪽으로 선회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발언이다. 실제로 산은은 이후 미국GM 본사와 한국GM 노조 측에 3자 대화를 요구하면서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법원의 결정에 따라 법인 분리가 끝내 어려워질 경우 GM 측이 기존 투자 결정을 뒤집고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GM이 한국은 물론 본토인 미국에서조차 과감한 구조조정 전략을 펼치고 있어 한국도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며 “산은 입장에서 출구전략을 마련하기가 오히려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구경우·서일범기자 bluesquar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