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없다면…아들이라도 경영권 넘기지 않겠다"

'깜짝 퇴임' 이웅열 코오롱 회장
신문방송편집인협회장단 간담
"창업 아이템은 '플랫폼 사업' 고려
회사 차려도 CEO는 하지 않을 것"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지난 28일 서울 마곡동 코오롱원앤온리타워에서 퇴임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제공=코오롱그룹

“금수저를 물고 있느라고 이빨이 금이 간 것 같다”고 말했던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의 모습은 하루 새 편안해 보였다. 청년으로 돌아가 창업을 하겠다는 이 회장은 창업 아이템도 이미 생각해둔 듯 쏟아지는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29일 신문방송편집인협회 회장단 초청 간담회에서 “창업 아이템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이 회장은 주저 없이 “플랫폼 사업이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그렇다고 창업한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겠다고 이 회장은 밝혔다. 그는 “직접 회사를 차릴 수도 있고, 투자자로 나설 수도 있지만 CEO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창업 아이템을 꼽지는 않았지만 이 회장은 블록체인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지난해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블록체인을 공부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며 “앞으로 1년 정도 4차 산업 분야 인사들을 많이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천천히 공부하며 창업을 준비하겠다”며 “창업 시기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1년이 넘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들이 궁금해하시는 그 모든 것들을 앞으로 행동으로 보여드리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4세 승계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손사래를 쳤다. 언제 외아들인 이규호 전무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나중에 능력이 있다고 판단이 돼야 (경영권 승계가) 가능하다”며 “나는 기회를 주는 거다. (아들은) 현재 주요 회사 지분도 전혀 없다”고 답했다. 다만 이 전무에 대한 아버지로서 애정과 신뢰는 아끼지 않았다. 이 회장은 “아들에게 스스로 (능력을) 키우지 않으면 사회가 너를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며 “하지만 나보다 훨씬 능력이 뛰어난 아들을 믿는다”고 말했다.


사퇴 후 경영권 관여와 관련해 이 회장은 단호했다. 그는 “국내에 있으면 이래저래 나를 찾을 것 같아서 당분간 해외에 나가 있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고 이동찬 회장)한테 물려받고 나서 아버지로부터 아무런 경영상의 지시도 없었다. 처음 인사를 들고 여쭤보러 갔더니 안 본다고 하셔서 혼자 처리했던 기억이 있다. 나도 관여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주주로서의 책임에 대해서는 “경영진이 정말 잘 못할 때, 피치 못할 때 대주주로서 정당한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 CEO들은 이미 미래에 대해 상당히 많은 투자를 해와서 경험이 많다. 오히려 내가 없으면 더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퇴임을 결심한 계기에 대해 본인의 변화 속도가 느려 회사에 걸림돌이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3년 전부터 퇴임을 생각했고 지금이 떠날 때라고 결심해 서둘렀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주주로서 봤을 때 현 경영진이 코오롱을 이끌면 더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주주로서 권한 행사를 안 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본인이 오히려 회사에 걸림돌이었다고 생각되는 순간 퇴임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 회장은 무노동·무임금을 관철하려다 노조와 충돌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지금은 격 없이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노조와 친해졌다고 했다. 그는 “노조도 지금은 99% 열심히 상생해보자고 한다”며 “일터의 주인은 직원들”이라고 강조했다./박성호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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