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철부지 脫원전 정책

구윤모 인하대 생명공학과 교수


얼마 전 중국의 내륙 투르판 지역을 여행했다. 소문난 대로 살갗을 태우는 강렬한 햇살과 더위는 몇 분만 나와 있어도 일사병의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선크림으로도 어림없어 얼른 그늘로 들어가는 것이 상책이다. 한편 이곳에서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광활한 평야 지역에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세찬 먼지바람이 불고 있었고 눈앞에 놓인 수백기의 풍차 위에는 미끈하게 생긴 날개들이 신나게 돌고 있었다. 중국의 고전소설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서역을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불길이 이글거리는 화염산, 그리고 이 불길을 끄기 위해 강력한 바람을 일으킨다는 파초선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가 과연 여기서 이렇게 나왔구나 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사계절이 뚜렷하고 일기가 온화하며 강수량이 풍부해 살기 좋은 나라임을 감사하며 살아왔다. 삼천리금수강산이라 부르며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러한 자연 혜택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모든 자연에너지는 밀도가 낮아 에너지생산, 특히 대량생산에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뜻한다. 한마디로 평화로운 농촌의 설경과 눈 덮힌 태양광패널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또한 국토의 3분의2가 산악 지역이라 평야 지역은 좁은 농지와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의 인구밀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지리·기후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 발전과 같이 고밀도 기술집약적 에너지만이 실현 가능성이 있으며 이산화탄소 배출과 같은 환경적 제약을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는 것을 그간의 산업화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대체에너지를 대표하는 바이오·태양광·풍력 에너지의 경제성을 근미래에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진국 진입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앞둔 우리나라는 발전의 주동력으로 원자력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늦은 산업화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지난 30년간 자동차·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해 세계를 상대로 착실히 국가의 부를 쌓았다. 그러나 이후 이미 황우석 사태로 인해 바이오 분야의 커다란 미래 먹거리를 놓친 후 변변히 내세울 만한 기술이 없었다. 이제 원자력 발전이라는 마지막 큰 먹거리를 앞에 놓고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술적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관리자들의 비과학적 아집으로 국부창출의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릴 위기에 처해 있다. 프로야구에서는 승패의 결과가 그 한 게임으로 끝나지만 어이없는 탈원전 정책과 그 여파는 앞으로 수십년간 국가 경제를 절뚝거리게 할 것이다. 짧은 시간에 우수한 과학기술자와 기업가들에 의한 국력 향상도 국가의 운이고 한 시대, 철없는 위정자들에 의한 국력의 상실도 그저 불쌍한 국운일 뿐이라 치부하고 말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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