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1억이 더 생기면 아이 낳으실 건가요

김성태 출산주도성장 논란 그 후…
시립대 연구팀, 재정학회 추계학술대회 발표 보니
1억 크레딧 지급시 합계출산율 0.213~0.523 증가
여성 육아부담·근무환경 개선 없으면 효과 반감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9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저출산 대책으로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신생아 1인당 1억원을 지원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이 같은 ‘출산주도성장’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여성계와 여당에서는 ‘여성의 출산을 성장 도구로 생각한다’는 비판이 일었죠.

김 원내대표 발언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출산=1억원’ 이야기가 흘러나온 배경을 살펴보면 그럴싸한 면도 분명 있습니다.

우선 심각한 저출산입니다. 통계청이 지난달 28일 발표한 ‘9월 인구동향’을 보면 3·4분기 합계출산율은 0.9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전 분기(0.97명)에 이어 2분기 연속 1을 밑돌았는데요, 이에 따라 올해 합계출산율은 연간 기준 첫 0명대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됩니다. 여성이 가임기간 동안 아이를 한 명도 낳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한 나라의 인구가 유지되려면 합계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합니다만,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이 땅에 인구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는 셈이죠. 굳이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더라도 저출산은 당장 우리 경제에 큰 부담입니다. 성장 동력도 떨어지고, 특히 고령화와 겹치면 몇십 년 뒤에는 적은 수의 젊은이들이 많은 노인을 부양하느라 경제 활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지난 9월 국회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다음으로는 저출산 해결에 쏟아붓는 막대한 예산입니다. 정부는 지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저출산 대책 중앙정부 예산으로 130조원 정도를 썼습니다. 내년에도 한 해 27조원이 넘는 돈이 들어갈 전망입니다. 지난해 출생아 수는 약 35만8,000명입니다. 올해와 내년은 이보다 적을 텐데요, 저출산 예산이 더 늘고 출생아가 적어지면 사실상 1인당 1억원이 그렇게 많은 돈도 아닙니다. 이거 저거 항목별로 다 떼어줘 복잡하게 만드느니 차라리 1명당 1억원을 보장해주는 게 차라리 효과적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죠.

마지막으로는 정말 실질적인 이유인데, 아이를 키우는 데 경제적 부담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맞벌이가 대세인 요즘 환경에서 아이가 스스로 자기 앞가림을 하기까지 키우는 동안 양육비도 많이 들어가고 청소년기를 넘어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사교육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제적 이유와 아이를 제대로 기를 여건이 되는지를 따져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한 명만 낳는 경우도 나타나죠.


물론, 그 전에 결혼도 연애도 취업도 하기 어려운 현실도 있지만 여기까지 짚고 넘어가면 이야기가 너무 커지는 만큼 이번에는 건너 뛰겠습니다.

어쨌든 이런 논란들은 저출산이 얼마나 간단하지 않은 문제인지를 보여줍니다.

저출산 대책 관련 주요 지원 사업 내역

그런데, 시작이 어떻게 됐는지를 떠나 1억원을 준다면 합계출산율을 최대 0.5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와 소개해드리려 합니다.

한국재정학회가 지난 10월 강원도 양양에서 개최한 추계학술대회에서 송헌재 서울시립대 교수와 조하영·신우리 시립대 박사과정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새로운 형태의 출산 및 보육정책과 기대효과 분석’이라는 논문을 발표합니다.

이 연구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아이라면 소득에 상관없이 1억원의 크레딧을 지급하여 교육 및 의료 등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출생 크레딧’ 제도라는 실험적인 제안의 효과성을 살펴봤습니다. 선행연구를 이용해 추정한 결과 출생 크레딧 제도를 시행한다면 합계출산율이 0.213~0.523 증가한다는 결론이 도출됐죠. 여기서 말하는 크레딧에는 여러 조건이 붙습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원칙적으로 크레딧 전액은 아이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어느 정도까지 자라기 이전에는 부모는 단지 대리인으로서 아이에게 필요한 물품이나 서비스를 구입하는데 크레딧을 사용하는 권한을 위임받는 구조이죠. 또 다른 저출산 대응정책 및 보육지원 관련 정책을 폐지하고 아이에게 지급되는 크레딧 만으로 제도도 일원화 하는 상황을 가정했습니다. 지금까지 시행된 정책들은 임신, 출산, 보육 등 각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책이 부분적이고 단편적으로 제공됐지만 이 제도는 이러한 지원체계를 단일화해 양육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각 가구의 선택에 맡기는 것이죠. 아이가 성인이 되면 크레딧 잔액을 현금으로 지급하게 해 생활 및 독립기반 자금으로 활용하도록 했습니다. 이 제도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설문결과, 응답자의 80.1%가 본 제도가 출산의향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고, 53.8%는 제도 도입에 찬성했다고 연구팀은 밝혔습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물론 1억이 다는 아닙니다. 부모가 크레딧을 함부로 쓰지 못하는 수단도 필요하고, 여성에게 가중된 육아에 대한 부담, 일과 가정을 함께 영위할 수 없는 근무환경 등의 변화도 따라줘야 한다고 연구팀은 덧붙였습니다.

출산할 때 1억을 주는 정책의 현실화가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이미 현재 복지정책 구조가 만들어놓은 기존 체제와 기득권을 한 번에 없애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 또한 이 정책의 실현가능성을 떨어뜨리는 듯 합니다. 다만 이번 논의가 알려주는 분명한 사실은, 현재 저출산에 쓰이는 막대한 예산이 좀 더 가치 있고 생산적으로 쓰이도록 정책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현재의 저출산 구도를 깨뜨릴 파격적이고 확실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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