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름 단독 인터뷰] "7개월 만에 다시 신은 스케이트... 묵묵히 믿어준 분들 덕분"

새 시즌 한국 빙속 중 유일한 금
7일 3차 대회서 2연속 금빛 도전
평창 왕따주행 의혹에 여론 뭇매
정신적 충격에 PTSD치료 받으며
스케이트 관둘 생각까지 했지만
'부딪쳐서 이겨내자'로 마음 바꿔
다음 올림픽 땐 서른, 그래도 도전




김보름(25·강원도청)이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뒤 처음 스피드스케이팅(빙속) 경기장을 찾은 것은 10월1일이었다. 그 7개월여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김보름은 올림픽 여자 팀 추월 경기 직후 짧은 TV 인터뷰에서 동료를 탓하는 듯한 자세로 도마에 올랐고 이는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으로 확대하면서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다. 며칠 뒤 치른 매스스타트 경기에서 은메달을 따낸 그는 관중석을 향해 사죄의 큰절을 올리며 눈물을 쏟았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여전히 싸늘했다. 김보름의 국가대표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와대 홈페이지 청원은 동의 인원이 60만명을 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감사 결과 김보름이 고의로 동료를 따돌린 정황은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김보름은 다시 일어서기까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지난 주말 서울 노원구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김보름을 만났다. 그는 “올림픽 끝나고 처음 여기를 찾았던 날은 스케이트를 타지 않고 그냥 경기장을 둘러보기만 했다. 정말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하루였다”고 돌아봤다. 그때 이후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지난달 24일 김보름은 일본 홋카이도에서 끝난 2018-201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2차 대회 매스스타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유의 막판 스퍼트로 총거리 6,400m를 8분52초180에 뛰었다. 올 시즌 한국 남녀 대표팀을 통틀어 첫 금메달이었다. 앞서 1차 대회 때도 동메달을 땄던 김보름은 오는 7일 폴란드에서 개막하는 3차 대회에서 3개 대회 연속 메달이자 2연속 금빛 질주에 도전하기 위해 2일 출국했다.

2018년 한 해를 한 줄로 정리해달라는 말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좀처럼 입을 떼지 못하던 김보름은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를 요청하자 “‘수고했다’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열일곱의 늦은 나이에 쇼트트랙에서 빙속으로 전향해 금메달 유력 후보로 생애 첫 올림픽을 경험했던 한 해였다. 값진 메달을 따냈지만 들불처럼 무섭게 번진 비난 여론에 말 못할 충격을 경험했던 한 해이기도 했다. 일련의 논란과 그에 따른 뭇매를 언급하며 억울한 부분은 없느냐고 묻자 김보름은 “그때 일을 하나하나 생각하기보다는 지금을 생각하고 싶다”고 했다. “시간도 흘렀고 저는 또 이렇게 스케이트를 타고 있고…. 과거보다 지금을 생각하고 싶어요.”


김보름은 문제의 팀 추월 뒤 열렸던 매스스타트 출전도 포기하려 했다.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스케이트 자체를 그만둘 생각이었다. 김보름은 “사실상 그만뒀다가 돌아온 것으로 봐도 틀리지 않다”고 했다.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공백기가 길어질수록 스케이트장에 가는 게 더 힘들어질 거라고, 피하기보다 하루라도 빨리 부딪쳐서 이겨내려고 해야 나을 수 있다고 해서 ‘한 번 타보자’로 생각을 고쳐먹었다”면서 “차근차근 훈련을 시작했고 지금은 정신적으로 많이 나아진 상태”라고 했다.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면 지금 어떤 모습일까. 김보름은 “다른 것을 하지 못하고 지낼 것 같다. 스케이트는 제 삶이었는데 삶의 의미가 없어진 거니까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는 “돌아오기까지 묵묵히 믿음을 보내주신 엄마가 있었고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꽤 있었다. 누군가는 저를 믿어준다는 생각에 다시 좋은 모습을 보여야겠다는 쪽으로 힘을 냈다”고 돌아봤다.

트레이드였던 노란색 머리카락은 올림픽 뒤 검게 바꿨지만 최강자를 바라보는 경쟁팀들의 시선은 여전히 날카롭다. 장거리 빙속과 쇼트트랙을 결합한 방식의 매스스타트는 2015년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뒤 평창올림픽을 통해 인기 종목으로 부상했다. 이렇다 보니 메달 경쟁 선수가 3~4명에서 7~8명으로 부쩍 늘었다. 국가별로 2명이 출전하는데 2명 모두 기량이 뛰어난 팀들이 많아졌다는 설명. 개인적인 시련과 더 치열해진 경쟁에도 김보름은 간판 타이틀을 지켜낸 것이다. 그는 “체력적인 부분에서는 예년의 반도 준비가 안 된 상태였다. 준비가 안 된 만큼 욕심부리지 말고 열심히 타자는 생각이었고 첫 대회에서 어찌어찌 3등을 하고 나자 2차 대회를 준비하는 1주일 동안 조금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아무래도 저한테는 금메달이 간절했던 것 같아요.”

평창올림픽이 처음이자 마지막 올림픽이라고 생각했던 김보름은 지금은 두 번째 올림픽을 내심 기대하고 있다. “좋은 기회가 주어지고 그때도 좋은 컨디션이라면 2022 베이징 올림픽도 뛰고 싶어요. 그때는 저도 한국 나이로 서른인데 돌아보면 예전에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하다 보니까 돼 있더라고요. 된다는 생각으로 해봐야죠.”

김보름은 월드컵 3차 대회를 준비하며 하루 1만5,000m씩 얼음 위를 달렸다. 여름에는 사이클을 하루 80~100㎞씩 탄다. “장거리 선수라서 훈련량은 어쩔 수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 그는 “어떤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늘 자극이 된다. 누군가에게 그런 자극을 줄 수 있는 위치까지 오르는 게 궁극적인 목표”라고 했다. 스케이트를 언제까지 탈 거냐고 묻자 김보름은 “끝은 항상 기약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스무 살 때는 평창올림픽을 멋지게 마치고 스케이트를 그만두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운동했어요. 그런데 벌써 올림픽이 끝난 지 오래인데 저는 스케이트장에 있잖아요. 많은 분들의 응원과 도움 덕에 이 위치까지 와있다는 것을 잊지 않을 겁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사진=권욱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