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편의점 자율규약 제정 당정협의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편의점 신규 출점 시 타 브랜드 간에도 100m 이내 거리 제한을 두는 게 이번 논의의 핵심이다. /이호재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3일 편의점 신규 출점 시 담배 판매권 거리제한을 준용해 사실상의 ‘거리제한’을 두기로 합의했다. 지난 2000년 폐지된 편의점 거리제한이 18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김태년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편의점 자율규약 제정’ 당정협의회 후 브리핑에서 “자율규약에 참여하는 가맹본부의 경우 지자체별 ‘담배 소매인 지정 거리’나 상권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신규 출점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는 “80m 이내 출점을 금지하는 자율규약은 1994년부터 몇 년간 시행됐지만 2000년 공정위에서 담합으로 판단해 폐지된 바 있다”며 “이에 당정은 획일적 거리제한보다 점주가 출점과 폐점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종합적 방안을 자율규약에 담기 위해 업계와 논의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규약에는 편의점 폐점을 쉽게 하기 위해 점주 책임이 아닌 경우에 한해 위약금 부담을 면제 또는 감경하고 최저수익 보장 확대를 추진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직접 제한 대신 ‘담배판매권’ 지렛대로 담합 피해가=편의점 업계의 이번 자율규약은 정부가 18년만에 기존 결정을 살짝 뒤집으면서까지 뒷받침하고 나섰다는 게 가장 눈길을 끈다. 과당 출점에 따른 출혈경쟁의 문제가 부각되면서 이마트24 같은 편의점협회에 가입되지 않은 업체도 규약에 참여할 정도다.
이번 규약은 지자체별 담배소매인 지정 거리 규제를 참고해 타 브랜드 편의점 간 100m 정도의 거리 제한을 두는 게 골자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담배소매인 지정업소 간 거리는 도시의 경우 50m, 농촌은 100m를 유지해야 한다. 서울시 일부 자치구는 거리 제한을 100m로 늘렸으며 서울시는 이를 시 전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업계는 공정위의 담합 판단을 고려해 지자체별로 상이해 상권의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담배소매인 거리 규제를 참고하기로 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올해 하반기부터 자발적으로 규약 안을 마련하면서 80m 거리제한을 다시 검토했지만 일률적인 거리 기준을 규약에 명시할 경우 과거 공정위의 담합 판단에 걸릴 수 있었다. 지난 1994년부터 시행했던 규약이 6년만인 2000년 공정위로부터 ‘부당한 공동행위금지 위반’으로 보고 시정명령을 받은 역사가 있다.
하지만 편의점 과밀화가 심해지고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높은 가맹수수료 등으로 점주는 최소한의 수익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면서 업계의 자율규약 재추진에도 속도가 붙었다. 공정위 관계자는 “업계의 자율규약인 만큼 규약을 어기는 업체가 발생할 경우 가맹거래법으로 제재할 여지는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업계가 심의위원회를 거쳐 제재할 수 있고 공정위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업계, 부담 늘어나나 반전 기회 삼아야=편의점 업계는 이번 자율규약으로 부담이 늘어나겠지만 또 다른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업계 한 관계자는 “편의점 업계는 이번 규약을 계기로 다양한 전략을 통해 이를 상쇄시키거나 오히려 반전 기회로 삼으려는 노력을 할 것”이라며 “창업비용 증가나 수익률 저하로 단기간에 바로 직결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자율규약에 따라 신규 출점 자체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편의점에서 담배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 안팎으로 크기 때문에 이를 포기해 가며 영업할 가맹점주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는 얘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율규약에 따라 출점이 줄어들면 그만큼 기존 점포를 보유한 점주들의 기득권이 상당히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새로운 논란거리도 예고=반면 일각에서는 이번 자율규약이 기존 점포를 운영하는 가맹점주에게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점포가 담배 판매권 거리 제한에 저촉되는 곳에 위치한다면 가맹계약기간을 채우고 재계약하는 과정에서 계약조건이 더 좋은 다른 편의점 프랜차이즈로 옮기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편의점 가맹점주는 “프랜차이즈를 바꾸고 새롭게 개업한 것이 신규 출점으로 간주되면 영업이 불가능해지는 게 아니냐”며 “이러면 점주가 재계약시 불리한 조건도 감수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반면 영업권의 양수도만 불가능할 뿐 점주 본인이 브랜드를 바꾸는 건 출점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편의점 가맹점주들이 폐점하게 되면 부담해야 할 위약금 등의 문제가 선언적 차원에서만 언급된 점은 앞으로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편의점 가맹본부, 각 점포별로 계약사항이 천차만별이라 일괄적으로 규제할 수 없는 한계를 감안한 결과물이다. 일부에선 일정 기간 위약금을 물지 않고 폐점할 수 있는 ‘희망폐업’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다. 반면 편의점 업계에서는 위약금이 단기간에 다른 브랜드로 갈아타는 상황을 막는 취지로, 일부 독소조항은 개선하되 세부조항을 늘리는 식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편 이번 규약에서는 최저수익보장 확대가 빠졌다. 현재 각 편의점 가맹본부에서는 개점 후 상권에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초기 1년가량 점포에 대해 최저수익 보장을 실시하고 있다. 반면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 일부 점주들은 가맹계약 전 기간 동안 최저임금 수준 혹은 그 이상의 수익 보전을 요구하고 있다. 가맹본부에서는 현 수준 이상의 최저수익보장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준호·김능현·빈난새·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