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살이 살 돈도 없는데 임대주택 언감생심"

인권위, 비주택 주거 실태조사 발표
국일고시원 화재 생존자도 참석
주거자 현실 동떨어진 정부 대책 비판

지난달 오전 화재가 발생한 서울 종로구 관수동의 한 고시원에서 경찰과 소방 관계자들이 화재 감식을 하고 있다./송은석기자

“고시원에서는 세면도구만 들고 가면 살 수 있지만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세탁기, 식기, 이불 등을 전부 사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200만~300만원이 필요합니다. 국일 고시원 화재 후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6개월 동안 임대주택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세간살이를 준비하느니 그냥 고시원에 살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고시원, 쪽방촌 거주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고 현실을 고려한 주거 대책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촉구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 대책이 계속해서 비주택 거주자들을 양산한다는 취지에서다.

4일 서울 종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비주택 주거실태 및 제도 개선 방안 논의를 위한 토론회’에 쪽방촌, 고시원 거주자들이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에서 살아남은 양모 씨는 이날 토론회에서 “옷 한 벌 못 갖고 대피한 사람들한테 6개월만 임대주택 가서 살라는 것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서 “6개월 동안 보증금 없이 월세, 권리금을 내라고 하는 데 그것도 (고시원 거주자들에게) 부담이다”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구 고시원에 거주한다는 권모 씨는 “고시원에 살기 전 남대문 쪽방에서 살다가 불이나 불에 대한 공포가 크다”면서 “지금도 고시원에 출입구 쪽 방을 선호해 살고 있지만 고시원에 비상구도 없고 소화시설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 8~9년간 살았다는 윤모 씨는 “다리를 절단해 현대식 화장실을 써야 하는데 쪽방촌 화장실은 재래식이라 쓸 수가 없다”며 “화장실을 가려면 외부로 나가야 하는데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화장실을 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당사자들의 증언 외에 한국도시연구소가 진행한 실태조사도 공개됐다. 실태조사는 지난 7월부터 한 달간 숙박업소, 판잣집, 비닐하우스, 고시원 등 비주택 가구 203개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비주택 주거자 대부분(84.2%)은 1인 가구였다. 이들은 임차할 목돈이 없어 보증금이 없는 비주택을 선택했다고 답했다. 주거면적이 2평(약 6.5㎡) 미만인 곳이 54.2%에 달했다. 10가구 중 2가구(19.7%)는 고시원 등에 거주하면서 범죄 피해를 당하기도 했다.

응답자들은 현재 거처에서 겪는 어려움으로 55.2%가 ‘거처의 열악한 시설’을 꼽았다. 독립된 부엌이 없는 비율도 33%였다. 거처 내 난방시설이 없는 가구가 24.1%, 겨울철 실내온도를 적절히 유지하지 못하는 가구도 57.5%로 나타나 겨울철 추위대비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난방시설이 고장 나도 월세 인상이나 퇴거의 위협 때문에 임대인에게 수리조차 요청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조영선 인권위 사무총장은 “국일 고시원 화재로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지만 아직까지도 비주택시설의 인권 실태와 대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면서 “인권위는 인권 침해 실태를 고발하고 그에 따른 개선 방안을 권고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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