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망 관리 또 '구멍'...터널사고 경보체계 '깜깜'

과기정통부 제대로 된 규정없어
터널 진입예정車 안내방송 안돼
2차 교통사고 등 대형재난 위험
선진국 참고 모든 대비책 세워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KT의 통신대란과 관련 통신시설 감독을 부실하게 한 데 이어 고속도로 터널사고시 활용할 방송설비 규정에도 허점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터널 안에서 사고가 날 경우 2차 사고의 위험과 치사율이 급격히 높아지는 만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터널 입구에 재난 경보 방송시설을 마련해놓았지만 과기정통부는 전파법에 이를 제대로 규정하지 않아 시설 구비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사고관리 책임이 있는 한국도로공사는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 소관부처가 근거 규정을 마련하면 재빨리 시설을 갖추겠다는 입장이어서 규정 보완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4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감사원,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국내 고속도로의 터널사고시 재난 경보방송이 선진국보다 부실하게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터널에서 갑작스레 사고가 발생하면 터널 안으로 진입한 차량은 재난 안내방송을 들을 수 있지만 터널 밖에서 진입 예정인 차량에는 현재 안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한국도로공사가 터널 안에서만 라디오 FM 등을 원활하게 청취하도록 방송설비를 설치해 비상시 이를 경보방송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이다. 터널 밖에 경보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아 2차 사고 위험은 여전히 큰 상태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6년간 터널을 제외한 일반 교통사고의 치사율은 2.2%인 데 비해 터널 내 교통사고 치사율은 5.1%로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터널 내 2차 교통사고의 위험성은 심각하게 높았다. 터널에서 사고가 발생한 뒤 수습 현장을 미처 피하지 못해 발생한 2차 사고의 최근 10년간 치사율은 47.8%까지 치솟았다.


현재 미국, EU 등 주요 선진국에서는 터널 사고시 진입부의 차량들에 재난 경보 방송을 하도록 규정돼 있다. 미국은 50~100와트(W)의 출력으로 무선국 시설에 따라 방송을 하도록 규정했고 EU는 25밀리와트(mW)~1.6와트(W)의 출력으로 방송하도록 정해 놓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 같은 출력 근거 등 규정이 없어 터널 외 설비를 전혀 구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통신장비를 설치하려면 과기정통부와 방통위에서 근거 규정을 마련하고 비상시 방송용 주파수의 활용을 허용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감사원은 지난 4월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터널 입구에서 재난방송이 가능한지 기술적 검토도 진행했다. 상주·마성 터널 등 사고위험이 큰 터널 9곳에 소출력 라디오 주파수로 재난 경보 방송을 해 본 것이다. 감사원 측은 해당 출력으로 운전자들에게 충분히 안내됐다고 평가했다. 재난방송 설치 비용도 많지 않았다. 터널 입구에서부터 500m 거리까지 안테나 25개를 설치하는 비용은 1,950만원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이같이 지적하자 과기정통부는 뒤늦게 대비책 마련에 분주하다. 터널 밖 경보가 가능하도록 방송장비의 기술 기준을 마련 중이라는 입장이다. 과기정통부는 지난 KT 아현지사의 통풍구 화재와 관련해 통신시설 분류·감독을 제대로 못 했다는 지적을 받은 데 이어 재난 상황을 대비한 방송설비 규정도 불충분하게 하는 등 재난 대비책에 대한 전반적 점검이 시급한 것으로 평가받는 상황이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모든 재난 상황을 미리 대비해 법 규정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긴 어려울 수 있다”며 “하지만 선진국 사례들과 비춰 필요한 재난방지 대책들은 빨리 도입해 피해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동효기자 kdhy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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