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안 돈다

소비 투자없이 부동자금만 쌓여
유통속도 사상 첫 4분기째 0.7↓
통화승수·예금회전율도 바닥


시중 돈이 경제활동에 얼마나 사용되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유통속도가 4분기 연속 0.7을 밑돌았다. 사상 처음이다. 시중 자금 수요를 나타내는 통화승수 역시 외환위기 때보다 낮고 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은 30년 만에 최저다. 돈이 투자나 소비보다는 자산투자나 부동자금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경제가 침체되고 활력을 잃고 있다는 의미다. 5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4분기 통화유통속도는 0.6812에 그쳤다. 지난해 3·4분기 0.7116에서 4·4분기 0.6920으로 떨어진 뒤 줄곧 0.6대를 유지하고 있다. 통화유통속도는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통화량으로 나눈 것으로 시중에 풀린 돈이 거래에 사용되는 빈도를 보여준다. 유통속도 하락은 시중에 풀린 돈이 투자·소비로 연계되는 정도가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은이 공급한 본원통화가 신용 창조를 통해 늘어난 비율을 뜻하는 통화승수는 15.56(9월)으로 외환위기 전인 지난 1996년 4월(15.5) 이후 최저치다. 이뿐 아니다. 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도 16.4회로 1987년 1월(16.3회) 이후 가장 낮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최근 통화유통속도의 급격한 하락 추세는 투자와 소비둔화 등 경기적 요인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제조업 분야의 투자 활력을 엿볼 수 있는 시설대출 증가율은 눈에 띄게 둔화했고 대출처를 찾지 못한 금융기관이 채권투자에 나서면서 장기금리가 하락하는 등 금융시장에서는 실물경기 위축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김능현·임진혁기자 nhkimch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