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피앤지(P&G)가 한국 진출 30여년 만에 생리대 시장에서 전면 철수키로 결정한 것은 사업을 지속할 만한 메리트가 없다는 경영상 판단을 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사회적 공분을 샀던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 사태로 생리컵 등 대체재가 부각되는 상황에서 경쟁업체에 비해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도 국내 시장 철수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국피앤지는 지난해 말 국내 판매용 제품 생산을 위한 천안 공장 위스퍼 생리대 생산 라인을 멈췄다. 이 공장에는 물류와 생산, 해외 수입분을 한국식으로 재포장하는 라인까지 총 3개 라인이 있으며 이 가운데 생산 라인을 접은 것이다. 현재 대형마트와 온라인 유통망에서 판매되고 있는 위스퍼 제품은 공장 중단 이전에 생산된 재고 제품들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국피앤지의 내부 사정 때문에 올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만 위스퍼 제품을 공급하기로 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피앤지가 한국 시장에서 생리대 사업을 접는 배경은 불확실한 사업성이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현재 전체 매출 가운데 생리대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 미만이다. 90% 이상이 섬유유연제와 세제 등에서 나온다. 매출 부진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판매를 계속하는 것이 오히려 전체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1989년 피앤지가 한국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1990년대만 해도 ‘위스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국내 생리대 시장을 절반 이상 차지했지만 이후 유한킴벌리(좋은느낌)와 LG유니참(쏘피·바디피트) 등이 편안한 착용감과 높은 기능성을 만족시키며 시장을 확장했다. 때문에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생리대 시장의 1, 2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피앤지가 유독 한국 시장에서만 점유율 한자릿수에 그치며 자존심을 크게 구겼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온·오프라인 시장조사업체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2018년 1·4분기를 기준으로 국내 생리대 시장은 1위인 유한킴벌리가 42.6%, LG유니참 19.7%, 깨끗한 나라 5.5%, 한국피앤지 5.1% 순으로 집계된다.
여기에다 생활용품 유통의 온라인 비중이 급격하게 높아진 2010년 이후에는 생리대와 기저귀 등이 병행 수입 방식으로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면서 한국피앤지의 매출 구조는 더욱 나빠진 상태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는 전 세계 어느 소비자들보다 생리대 품질에 대해 민감하고 섬세하다”며 “국내법상 생리대는 공산품이 아닌 식약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의약외품으로 분류돼 있어 품질 등에 관한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해야만 제조, 판매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기에 한국 회사의 제품은 오랜 시간 국내 소비자의 체격이나 피부 등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 왔고 관련 지식과 노하우가 축적돼있다”며 “회사 구조상 한국만을 위한 제품을 내놓을 수 없는 한국피앤지 제품이 소비자의 외면을 받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해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 사태도 리스크 관리에 민감한 글로벌 회사의 특성상 생리대 사업을 굳이 이끌고 나갈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힘을 실은 것으로 분석된다. 당시 직격탄을 맞은 곳은 깨끗한나라였지만, 이후 해외 유기농 제품을 직구로 사다 쓰는 소비자가 늘고 생리컵 등 대안이 부상하면서 생리대 업계 전반이 예전만 못한 상황이다.
한국피앤지 관계자는 “전반적인 시장 트렌드 변화에다 한국 소비자의 특성, 그리고 피앤지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비교해 (생리대) 사업 중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만, 함께 철수할 것으로 논의됐던 기저귀(팸퍼스) 사업에 대해선 “철수를 고려한 적이 없으며 온라인에서 영업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수민·변수연기자 noenemy@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