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판·검사나 변호사 대신 기자가 됐는가. 어떻게 기자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해 그렇게 많은 돈을 모을 수 있었는가. 왜 하필 그 많은 재산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는가.
이수영(82) 광원산업 회장이 쓴 ‘이수영 자서전-왜 KAIST에 기부했습니까?’는 이 세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질문은 이 회장이 평생동안 주위 사람으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물음들이기도 하다.
해방 이전인 1936년 8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이 회장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영특했다. ‘아들보다 강하고 씩씩하게’ 성장하길 바랐던 부모님의 바람대로 그는 당대 최고 명문이었던 경기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로 진학한다. 1년간 열심히 공부해 도전한 사법고시에 한 번 낙방한 뒤 이 회장은 그 길로 법조인에 대한 미련을 접었다. 골방에만 틀어박혀 책만 읽은 그 시간 동안 심신이 피폐해진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택한 직업이 신문사 기자다.
1963년 서울신문 기자생활을 시작한 이 회장은 현대경제신문을 거쳐 서울경제신문에 뿌리를 내려 1980년 전두환 정부가 서울경제신문을 강제폐간할 때까지 몸담았다. 그 스스로 “나는 아직도 서울경제신문을 친정으로 생각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 회장은 그 시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자서전은 기자 생활을 하며 쌓은 정·재계 인사들과의 인연,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골동품 취재기 등을 드라마틱하게 펼쳐낸다. 제법 특종도 하고 언론계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지만, 사회 혼란이 극에 달했던 1980년 새 삶을 모색하기 위해 언론에의 미련을 과감히 떨쳐내고 사업가의 길로 나아간다. 아버지가 남긴 50만원짜리 적금 통장 2개를 밑천 삼아 사업을 시작한 이 회장은 목축업과 모래 채취 사업, 여의도백화점 인수를 통한 부동산 사업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기업가로서 수완을 발휘했다. 그리고 2012년 9월 이렇게 피땀 흘려 모은 80억원 정도의 재산을 KAIST에 기부했다.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인 과학기술 인재 양성에 써달라”는 당부와 함께.
대개 기업인의 자서전이란 익히 들어온 뻔한 성공 스토리의 반복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가진 독자들에게 이 책은 기분 좋은 반전을 선사한다. “꽃길도 있었고 가시밭길도 걸었던” 인생을, “진흙탕에서 꽃을 피우려 온몸을 던졌고 아름다운 정원에서 잡초처럼 살기도 했던” 인생을 저자는 시종일관 담백하고 단정한 문체로 회고한다. 2만5,000원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