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의 확대’라는 시대의 변화가 인간관계의 형성은 물론 비즈니스 생태계까지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다. 가상공간에서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찾고 그들과 어울리다가 현실 세계에서도 만나는 일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 과정이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나아가 이를 토대로 사업모델이 생겨나고 기업이 탄생하기도 하는 놀라운 변화를 주도하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2030세대, 특히 싱글족이 있다. 자신을 위해 투자와 소비를 아끼지 않는 ‘포미(ForMe)족’은 사람을 만나 인맥을 쌓고 여가 생활을 즐기는 것부터 남다르다. 갈수록 학창 시절이나 직장 생활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수업시간이나 업무시간 외에 함께하는 시간은 크게 줄고 있다. 대학에 가면 학점 관리를 비롯한 스펙 쌓기가 우선이다 보니 과 학회 생활이나 동아리 활동을 위해 평일은 물론 주말까지 함께하는 것이 흔치 않아졌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회식도 줄어드는 추세인데 쉬는 날 단합을 도모한다며 등산을 소집하면 곧장 익명게시판에 불만글이 올라온다. 자기애로 똘똘 뭉친 싱글족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즐겨야만 하는데 벼락 회식, 주말 산행이 웬 말이란 말인가.
홀로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사회 전반적으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이를 해소하려는 공간으로 인터넷 커뮤니티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취미, 관심사, 사회적 가치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통해 소속감과 심리적 안정감, 연대감을 키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취향과 가치관이 확고하고 모바일 기기에 친숙한 만큼 인터넷 공간에서 이런 공감대를 형성할 상대를 적극적으로 찾고 있다. 직접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부담 없이 나와 공통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을 찾아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언제든 마음에 맞지 않으면 탈퇴해도 그만이다.
시장조사기업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84.8%, 30대 86.4%가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커뮤니티의 새로운 기능이 대두되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커뮤니티 가입률이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10년 83%였던 인터넷 커뮤니티 가입률은 2011년 76.1%, 2012년 73.8%로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지난해 79.2%로 다시 반등했다.
그 사이 커뮤니티의 기능은 크게 달라졌다. 커뮤니티 가입 목적에 대해 2010년만 해도 친목이라고 답한 응답자(복수응답 가능)가 42%로 가장 많았으나 지난해에는 비중이 27.8%까지 줄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모바일메신저로 인맥을 형성하고 관리하다 보니 친목 교류 목적의 인터넷 커뮤니티는 필요성이 줄어든 결과다. 대신 개인의 관심사를 찾거나 취미활동을 위해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여행·게임·재테크·쇼핑·패션·미용 등이 주된 관심사다.
취향 중심으로 결집하고 온라인상에서 교류하며 공감과 유대감을 높이게 되자 대표적인 SNS 공간인 페이스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개인이 뉴스피드를 올리는 사적 공간에서 그룹이나 페이지 같은 모임의 장 역할이 커지게 된 것. 마크 저커버그는 지난해 6월 ‘커뮤니티 구축’이라는 새로운 미션을 발표했다. 그는 “10억명의 의미 있는 커뮤니티 멤버를 만들 수 있다면 세계를 더욱 가깝게 만들 것”이라며 단순히 사람을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룹 내 아이디어를 통해 산재한 여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국내에서는 이미 변화가 감지된다. 페이스북 그룹 ‘여행에 미치다(여미)’는 대표적인 여행 커뮤니티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으로 현재 가입자가 29만명에 육박한다. 올해 일본 오사카 태풍과 홋카이도 지진 등으로 공항이 마비됐을 때는 일본 현지 재외공관보다 더 빠르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고교생 4명이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만든 ‘자취생으로 살아남기’는 어느새 가입자가 14만명을 넘었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연 정보를 공유하고 리뷰를 올리며 클래식에 대해 얘기하는 ‘클래식에 미치다’처럼 특정 주제만을 관심사로 모여든 사람도 적지 않다.
온라인에만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 활동으로까지 영역이 확장되기도 한다. 갈수록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커뮤니티의 외형과 결속이 강화되는 추세다. 연말을 맞아 이들 커뮤니티 참여자들은 색다른 송년행사를 준비하기도 한다. 여성 사업가, 스타트업 근무 여성들이 모인 페이스북 그룹 ‘스여일삶’의 멤버들은 8~9일 양일간 여성 네트워킹을 주제로 ‘스여일팔(스타트업 여성들의 2018)’ 행사를 연다. 올 한 해와 내년의 기획을 공유하는 자리다. 1990년생들의 모임 ‘구공백말띠’는 올해 마지막 날 20대의 마지막 새해 카운트다운 행사 ‘어쩌다 서른’을 기획했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날을 전후로 띠동갑 가수 박지현이 참여하고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위해 김영만 선생님을 모셔 종이접기 등을 함께할 예정이다.
커뮤니티의 발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업으로 성장하기도 한다. ‘여행에 미치다’는 여행 관련 콘텐츠를 제작하는 스타트업으로 발전했다. 직원들 대다수도 커뮤니티 가입자 출신이다. 여미는 내년 국내에 오프라인 여행단지를 구축할 계획이다. ‘자취생으로 살아남기’는 사회적 벤처기업 노잉커뮤니케이션즈를 설립해 이마트·다이소 등과 협업하며 1인 가구를 위한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클래식에 미치다’는 워너뮤직과 손잡고 클래식 컴필레이션 음반을 발매하기도 했다.
어떻게 남는 시간을 보내느냐, 어떻게 놀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단순히 시간 때우기를 넘어 기업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혼자 노는 것도 중요해진 세상이다.
/김광수기자 bright@sedaily.com